희생된 약자는 영웅화하고… 이웃 고통엔 무관심한 현실[출판평론가의 서재]

2023. 5. 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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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는 제목 그 자체로 적잖은 메시지를 던진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살아 있는 유대인은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적나라한 사례는 홀로코스트다.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1898년 무렵부터 하얼빈으로 집단 이주했고, 허허벌판이던 하얼빈에 도시의 기초를 놓았다.

유대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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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평론가의 서재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는 제목 그 자체로 적잖은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의 소설가 데어라 혼은 첫 문장을 통해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살아 있는 유대인은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적나라한 사례는 홀로코스트다. 흥미로운 사실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생생하고 자세하게 연대기순으로 정리”한 수많은 글보다 ‘죽은’ 안네 프랑크, 즉 ‘안네의 일기’를 더 사랑한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쟁점으로 직행한다. 죽은 약자들을 숭배하고 소비하면서, 정작 이웃에는 눈 감는 현실 말이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에도 죽은 유대인들을, 허위에 찬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곳이 있다.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1898년 무렵부터 하얼빈으로 집단 이주했고, 허허벌판이던 하얼빈에 도시의 기초를 놓았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혁명을 피해 “러시아계 비유대계 백인”들이 하얼빈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급기야 1931년에는 그들에 의해 유대교 회당이 불타기에 이르렀다. 박해받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치졸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21세기 초 ‘유대인 문화유산지구’가 조성되었지만, 옛 유대교 회당을 개조한 박물관에는 유대인 밀랍인형만이 관광객을 반긴다.

저자는 문학에 담긴 유대인에 대한 세상의 냉대도 분석한다. 대표작은 아무래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될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 당대인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 이미 유대인에 대한 살벌한 소문들, 즉 돈만 밝히는 냉혈한, 하여 살인쯤은 우습게 여긴다는 말들은 흘러넘쳤다. 때마침 발달한 인쇄술 덕에 발 없는 소문은 천 리를 갔고,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도 도를 넘어섰다. 다시 저자는 합리적 의심 하나를 던진다. 이러한 소문들이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셰익스피어의 명성에 의지해 반유대주의적 분위기를 고착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죽은 약자들은 때로, 그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영웅’이 되어 우리 앞에 서곤 한다. 평생 비정규직, 장애 등등의 이유로 차별과 배제 속에 살던 사람들이 잠시 잠깐 영웅이 되었다가 다시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곁에 숨죽여 살고 있는 고통 받는 이웃임을 기억하는 일이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한 경전의 가르침이 새삼 떠오른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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