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광장] 소통의 리더십

최태영 기자 2023. 5. 2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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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雍)'은 '물의 흐름을 막는다', '폐(蔽)'는 뭔가를 '차단하고 가린다'는 뜻이다.

요즘으로 치면 소통 부재에 대한 경고다.

그러다보니 당시 세상의 뜻 있는 지식인들은 듣기만 하고, 두 다리를 모은 채 입을 꼭 다물었다고 하니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 구절을 꺼낸 건 세종시 안팎에서 '소통 부재'란 지적이 끊이질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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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 막히면 모두 위태로워져
단순·단편·일방통행은 위험
행정은 신뢰의 속도로 움직여
최태영 취재2팀장

#. '옹폐지국상야(雍蔽之國傷也)'.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성어다.

'옹(雍)'은 '물의 흐름을 막는다', '폐(蔽)'는 뭔가를 '차단하고 가린다'는 뜻이다.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의미다. 요즘으로 치면 소통 부재에 대한 경고다. 시황제가 건국한 진나라가 짧은 시간 무너진 원인을 따지는 자리에서 사마천이 가의(賈誼·한나라 정치사상가)의 '과진론(過秦論)'이란 글을 빌려 한 말이다.

그 시대 역시 생각이 깊고 시세의 변화를 아는 인물이 없었던 것도 아닐텐데, 과감하게 충성을 다해 황제의 전횡을 막지 못했던 이유가 무얼까. 진나라에 꺼리고 피해야 할 습속이 많아 충성어린 충고를 하는 사람은 말도 끝내기 전에 목숨을 잃었던 시절이었으니, 오늘날에도 주는 메시지는 크다. 그러다보니 당시 세상의 뜻 있는 지식인들은 듣기만 하고, 두 다리를 모은 채 입을 꼭 다물었다고 하니 말이다.

#.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은 집권 초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국력이 쇠퇴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거문고를 비유해 통치의 이치를 진언한 책사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정신을 차린 위왕은 자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해 잘못을 바로잡았다. 이후 소통하고 인재를 영입해서 부국강병의 시대를 열었다. 충고를 받아들인 위왕의 소통 리더십이 빛을 발한 것이다.

#. 역시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22대 군주였던 장왕은 지도자로서 관용과 포용력, 유연성을 갖춘 춘추오패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장왕은 왕위에 오른 뒤 정사를 돌보지 않은 채 매일 사냥과 주연을 벌였다. 몇몇 대신들이 간언했지만, 장왕은 오히려 "간언하는 자는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생활이 3년간 지속되자 조정에는 간신들이 들끓게 됐고, 국력은 나날이 쇠락해 갔다.

어느 날, 장왕이 여느 때처럼 여인들과 놀고 있을 때 신하인 오거가 찾아와 말했다.

"수수께끼를 올리겠습니다. 언덕 위에 새가 있는데,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不飛,불비), 울지도 않습니다(不鳴,불명), 이 새는 무슨 새입니까?"

장왕은 "삼 년을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아오르면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이고, 삼 년을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수수께끼를 맞혔으니 물러가거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풍자임을 알고 있는 장왕이 신하인 오거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암시를 준 것이다.

결과는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왕은 이제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중단하고 정사를 살피기 시작했고, 춘추오패의 한 자리를 차지할 만큼 국력을 일으켰다. 그 유명한 '불비불명' 고사의 배경이다.

사마천의 사기 구절을 꺼낸 건 세종시 안팎에서 '소통 부재'란 지적이 끊이질 않아서다. 취임 1주년이 돼 가는 동안 지자체장은 열심히 소통을 하기 위해 직원이나 주민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고 현장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소통이 안 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지니 아이러니하다. 경청과 함께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일방의 강연(?)만 있다. 구체적인 현안 질의에는 명쾌한 해설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주요 시정 추진 과정에선 실국장이나 계·과장들과 미스매칭 되는 부분들도 종종 발생한다.

시 안팎에선 시정의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단편적이거나, 지나치게 일방통행 탓인 듯하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인재풀이 약한데서 벌어지는 문제라는 시각도 많다. 이런 행정 시스템은 일단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움직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급변하는 오늘날, 행정은 오로지 소통을 통한 신뢰의 속도로만 움직일 수 있다.

2000년도 훨씬 지난 요즘 시대에도 우리는 불통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옹폐지국상야 (雍蔽之國傷也)', '불비불명(不飛不鳴),'.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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