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in포커스]100세 앞둔 '미중 데탕트' 주역 키신저의 신냉전 예측은?

김민수 기자 2023. 5. 2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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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위기는 평화 협상으로 해결해야…곧 핵 위협으로 이어질 수도"
"현재의 미·중 갈등은 옛날과 달라…中 서구화 되는 것 기다릴 가치 없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9년 7월2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국무부 창립 23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가 오는 27일(현지시간) 100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은퇴 나이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키신저가 던지는 한 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 7일 키신저는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와 같은 위기와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험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털어놨다.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하기 위해 러시아로 갈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키신저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중국이 협상에 뛰어들었으니 올해 말까지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중국에 대해 키신저는 국제적으로 중국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양안 갈등이 곧 미·중 간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 "지금은 매우 위험한 시기"라고 경고했다.

키신저는 스페인 매체 엘 문도와의 인터뷰에서도 "중국과 미국 간 신냉전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중국이 옛날과는 다르게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신냉전이 그가 겪었던 과거의 냉전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은 현재 적대국이며 중국이 서구화되기를 기다릴 가치는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키신저는 한 회의에서 러시아를 '해체'하려는 시도가 곧 핵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괴멸적인 세계 대전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이 급변하리라 전망했다.

◇독일 출생, 미군으로 2차 대전 참전…73년 노벨상 수상

지난 1923년 5월27일 독일에서 출생한 그는 1938년 나치의 유대인 이주 정책에 의해 가족이 모두 미국에 이민했으며, 1943년에는 미군에 입대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전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1954년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정치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69년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됐다.

그의 업적을 꼽으라면 먼저 베트남전 종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베트남전 평화 협상을 체결하기 위해 소련을 핵전쟁으로 위협해 북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이 업적으로 그는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2018년 11월7일(현지시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걷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아울러 1971년에는 미국 고위급 인사 중 최초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는 저우언라이와의 회담을 통해 미·중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으며,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성사시켰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전 대통령이 물러난 후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에도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1975년 포드 행정부가 개각을 단행하면서 백악관 안보보좌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소속 지미 카터가 포드 대통령을 꺾자 1977년 국무부 장관직을 내려놨다.

헨리 키신저는 명시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이나 도덕적, 윤리적 전제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요인을 주로 고려하는 '현실정치'(Realpolitik)의 강력한 신봉자였다.

이와 맞물려 키신저는 베트남전 종식과 미·중 데탕트라는 업적을 이뤄냈음에도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정권을 지지했으며, 베트남전에서도 북베트남과 협상을 하면서 전쟁을 지연시켜 수많은 베트남인을 사망하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베트남전에서 중립을 고수했던 캄보디아를 폭격해 '킬링필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지적도 있다.

키신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있다. 1973년 김 전 대통령의 일본 도쿄 납치 사건 당시 키신저는 김 전 대통령을 구명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100세를 앞둔 키신저는 지난 1982년과 2014년에 각각 심장 관상동맥과 대동맥판막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열정적으로 저서를 출간하거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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