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누군가 없애고 싶다면 연락하세요, 소설가에게

한겨레 2023. 5. 2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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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이기 때문에 받는 오해가 있다.

내 소설에는 살인 미스터리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추리소설가라고 하면 살인(을 다룬 프로그램의)광이며 피 튀는 공포 영화를 즐겨 볼 거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가는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을 대신, 상상 속에서 확실하고 시원하게 없애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킬러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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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
엘 코시마노 지음, 김효정 옮김 l 인플루엔셜(2023)

추리소설가이기 때문에 받는 오해가 있다. 내 소설에는 살인 미스터리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추리소설가라고 하면 살인(을 다룬 프로그램의)광이며 피 튀는 공포 영화를 즐겨 볼 거라고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론 나는 강력 형사 범죄를 다룬 추리 소설 전문 번역가이기도 하므로 구글 검색 기록엔 누가 보면 의심하기 딱 좋게 온갖 무기 및 독극물 관련 내용이 가득하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에 나오는 핀레이 도너번처럼 킬러로 오해받은 적은 없다.

서른한 살에 인기 없는 작가인 핀레이, 남편인 스티븐은 부동산 중개인인 테리사와 바람이 나서 떠났고 두 아이의 양육비까지 줄이려고 한다. 베이비시터인 베로도 스티븐이 월급을 끊어버려 오지 않는다. 천방지축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로맨스 추리소설을 마감 전에 완성해야 한다니! 핀레이의 걱정도 미지급 청구서만큼 쌓여간다. 그 와중에 원고를 독촉하러 온 에이전트 실비아를 만나러 허술한 가발 스카프를 덮어쓰고 베이커리 카페에 달려간 핀레이는 살인 (소설) 계획이 오고 간 미팅이 끝난 후에 옆자리의 모르는 여자에게서 쪽지를 받는다. 5만 달러라는 액수와 낯선 남자의 이름, 주소가 적힌 이 쪽지는 남편을 죽여 달라는 의뢰서였다.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는 추리소설가가 품은 최악의 공포와 최고의 환상이 결합한 소설이다. 늘 살인을 구상하기 때문에 잠재적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오해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대단한 살인을 만들어 내면 작품이 술술 풀리고 거액의 출판 계약을 따낼 수도 있다는 공상. 핀레이의 어설픈 킬러 활동은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처럼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뜻하지 않은 공범이 등장하면서 사업은 본격적으로 돌변한다. 동시에 소설은 코믹과 로맨스가 결합한 미스터리로 진화한다. 이 장르의 원조인 재닛 에바노비치의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가 연상되는 전개이다. 킬러는 난데, 다른 범인도 있고, 시체는 늘어나고, 갑작스러운 로맨스의 향방도 알 수가 없다.

핀레이는 착각 덕에 소설을 썼지만, 이 소설의 작가 엘 코시마노는 치밀한 의도로 대중서사의 재료를 뒤섞었다. 작가는 우연한 오해가 거대 범죄 사건의 해결로 번져간다는 기존 스릴러의 뼈대에 여성들의 연대라는 중요한 결합 요소를 넣었다. 개성 넘치는 조연 캐릭터들을 그려냈고, 영상화를 대비했는지 삼각관계도 빼놓지 않았다. 익숙하지만 궁금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핀레이 도너번 시리즈는 쭉 순항하며 2023년 현재 미국에서 3편까지 출간되었다.

<당신의 남자를 죽여드립니다>는 가볍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휴가지 소설이지만 한편 추리소설의 본질적 효용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추리소설은 현실 범죄를 묘사하여 사회상을 구축하면서 그 구성원들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가학적인 남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여성들의 갈망과 사회를 좀먹는 범죄자들을 처단하고 싶은 사람들의 분노가 허구 속에서 죄책감 없이, 웃으면서 해소된다. 추리소설가는 내가 죽이고 싶은 사람을 대신, 상상 속에서 확실하고 시원하게 없애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킬러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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