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집 밖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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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창, 불이 꺼진 집.
늦저녁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집은 혼자 사는 집이거나 무슨 사고가 났다는 표지였다.
1인가구와 독거노인이 전혀 낯설지 않은 이 시대에 "불을 있는 대로 켜놓"은 집, 예컨대 잔칫집처럼 보이는 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가 혼자 불을 켜는 '독거청년'이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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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창, 불이 꺼진 집. 그 시절엔 부재 증명이었다. 늦저녁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 집은 혼자 사는 집이거나 무슨 사고가 났다는 표지였다.
“누가 불을 켜놓고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이런 넋두리를 하면 ‘이 친구, 결혼하고 싶구나’라고 새겨듣던 시절 얘기다. 그때는 이혼이나 독신이 사회적 낙인이었다.
결혼하고 가족을 건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남자는 서른이 넘기 전에 장가를 가야 했고, 가장이 되고 나서는,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자녀를 교육해야 했다.
가발을 내다 팔던 나라가 유조선과 반도체를 만들면서 국민소득이 1천달러, 1만달러로 늘어났다. 한강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동안 가장은 늘 ‘바깥사람’이었다. 집보다 일이 먼저였다.
고도 성장 시기에 가장은 울 수 없었다. ‘싸나이’는 울면 안되었다. ‘눈물 자국’은 세상에 졌다는 징표였다. 며칠 전 해고 통지를 받았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넥타이를 매고 집을 나서야 했다.
이상국의 시에 나오는 가장은 누구인가. 요즘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 중 하나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서 돈을 벌거나 ‘한자리’ 차지해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세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앞이 보이지 않는 젊은 노년들.
내게는 시 속의 단란했을 저녁나절이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1인가구와 독거노인이 전혀 낯설지 않은 이 시대에 “불을 있는 대로 켜놓”은 집, 예컨대 잔칫집처럼 보이는 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가 혼자 불을 켜는 ‘독거청년’이 더 많을 것이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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