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 거짓새들의 둥지
거짓새인 비행기만 날아들 것
끝까지 진실을 전하지 않는다면
거짓새는 계속 둥지를 틀 것이고
사라진 새들 흉내내며 날아다닐 것
삶에는 몇 개의 변곡점이 있다. 내게는 2006년이 그런 변곡점들 중 하나이다. 연구자들의 공동체에서 그런대로 행복하게 지내던 삶이 그때 틀어졌다. 그해 우리의 식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평택 미군기지 건설, 새만금방조제 공사에 관한 이야기로 뒤덮였다.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농부들을 내쫓고 집들을 부수는 모습, 새만금방조제 완성을 위해 갯벌 생명체의 마지막 숨구멍에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모습은 그대로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평생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공부한다는 게 뭔지 갑자기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어민들, 농민들, 이주노동자들, 장애인들. 그해에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내 공부 주제와 장소는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도 2006년에서 뻗어 나온 시간을 살고 있는 셈이다.
새만금은 그해 우리의 걷기가 시작된 곳이다. “처음에는 물과 흙과 바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의 조개와 천성산의 도롱뇽만이 소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태어나서 처음 써본 선언문을 계화도 갯벌에서 읽었다. 그날 밤 그곳 어민으로부터 떼죽음당한 백합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갯벌이 바싹 말라가던 때 비가 내리자 수많은 백합들이 뛰쳐나와 일제히 입을 벌린 채 죽었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생명에게 웃음을’이라는 문구를 목에 걸고, 떼죽음당한 백합 이야기를 품은 채 서울까지 걸어서 올라왔다.
방조제는 완성되었고 백합들은 죽었다. 지난 17년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었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수라갯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철새들이 날아들고 농게와 백합들이 숨을 쉬는 갯벌이 남아있다고 했다. 방조제가 완성된 후 정말로 많은 생명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생명이 마지막 갯벌 하나를 붙들고 있다고. 그런데 이 갯벌 또한 매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2006년의 날들이 17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생태조사단이 찍어 올린 영상들을 보니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뛰노는 아이들처럼 매립이 예정된 땅에서 고라니가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검은머리갈매기의 아기가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멸종위기종이라는 저어새, 황새를 비롯해서 정말로 많은 새가 매립을 앞둔 땅을 거닐고 있었다.
저 땅을 매립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신공항이 들어선다고 했다. 새만금 개발이 시작된 이래 계속되는 부끄러운 말들이다. 수십년째 개발은 무조건이었고 목적은 그때그때 생각해냈다. 쌀이 넘쳐나던 때 거대 농지를 조성하겠다고도 했고, 근처 산업단지가 텅 비어 있던 때 거대 산업단지를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자기부상열차가 상상 속에서 갯벌 위를 떠다닌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유치하고 수소 생산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한다. “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 그린 수소” 산업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거대한 탄소흡수원인 갯벌을 매립하면서 말이다. 그러고는 탄소배출원으로 지탄받는 비행기들이 오가는 공항을 건설하겠단다. 지난 세월 그대로다. 말들은 모순투성이고 돈 벌 생각만이 일관된다.
신공항이 완공되면 먼 데서 오는 새들은 착륙할 수 없고 거짓새인 비행기들만이 날아들 것이다. 멸종위기의 새들을 몰아내고 거짓새의 둥지를 만드는 일이 올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개발을 자축하는 행사들이 열린다. 생태 환경을 생각하는 걷기대회와 자전거대회가 열리고, ‘동물들의 친구’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최대 행사인 잼버리대회가 열린다. 생명을 죽이면서 생명을 생각하는 저 수십년의 위선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만금에서 살고 있는 생명들을 보기 위해 검색했더니 투자가 활기를 띤다는 기사만 넘쳐난다.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덕분이라고 한다. 당선인 시절 그는 새만금에 내려와 이곳을 “기업들이 바글거리는, 누구나 와서 마음껏 돈을 벌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활기란 살아 있는 것들의 기운이다. 그런데 마음껏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하니 생명은 죽고 거짓 생명들이 활기를 띤다.
우리에게 할 일이 남아 있을까. 17년 전의 나는 함부로 판단했고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패배한 뒤에도 싸웠고, 생명들은 죽어가면서도 긴 시간을 살아냈다.
끝까지, 아니 끝을 넘어서까지 진실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거짓새들은 계속해서 우리 곁에 둥지를 틀 것이고, 사라진 새들을 흉내 내며 우리의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닐 것이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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