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96] ‘었’이라는 한마디
개똥밭에 이슬 내릴 때 있다더니. 주식 계좌가 몇 해 만에 본전을 찾았다. 재산 10억 남짓이라던 아무개 가상 자산은 억 소리가 수십 번 날 판에, 알량해서 원. 그나마 여인의 향기처럼 스쳐갈 호조(好調)일지 어찌 아누. 그러게 근무시간에 농땡이 치면서라도 제대로 공부하든가. 아무튼 꽤 기세 올린 적도 있었건만.
‘있었건만’이 마땅한 표현인지 따지는 게 차라리 실속 있겠다. 우선 ‘올린’이라 한 데서 ‘적’이 지난 시점을 말함을 알 수 있는데. 기세 올린 과거를 이렇게 드러냈으니 또 과거임을 나타내는 ‘었’(‘ㅗ’ ‘ㅏ’ 뒤에서는 ‘았’)은 불필요. ‘있건만’이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한겨울 강에서 헤엄친 적이 있었다’도 마찬가지. 헤엄친 일은 과거로 끝나지 않고 현재도 미래에도 유효한 사실이므로 과거형 ‘있었다’보다 ‘있다’가 어울린다. 결국 ‘었’은 지난 일임을 알려주는 ‘적’과 같이 쓰면 군더더기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강에서 헤엄친 적이 없었다’도 틀리는 말일까. 이미 벌어진 일이 없어지지는 않아도, 없던 일이 벌어질 수는 있다. 지나간 어느 시점까지는 없었는데 그 뒤에 강에서 헤엄친 일이 있다면 저렇게 쓸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도 그런 일이 없을 땐 ‘없었다’가 아니라 ‘없다’가 자연스럽겠지.
‘북한은 과거 1800t 규모 잠수함을 건조한 적이 있다’에서는 ‘과거’라는 군말이 걸린다. ‘과거’를 빼거나, 굳이 쓰려거든 ‘과거에 ~ 건조했다’ 하면 좋겠다.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 누가 고위 공무원일 때 정부와 갈등한 일을 이렇게 얘기했는데 ‘었’이 겹쳐서 역시 어색하다. ‘말을 잘 들은 편은 아니다’ 해도 될 테지만, 과거를 돌이키는 문맥이니 ‘잘 듣는 편은 아니었다’가 더 매끄러워 보인다.
묵혀두자 작정은 했어도… 이놈의 주가(株價) 속시원히 내달리는 법이 없다. 모처럼 든 볕은 좀 어떤지, 쥐구멍 들락거리듯 마음도 들락날락. 그래도 화장실은 가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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