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건설노조가 정말 강요죄인지 고민해주세요

김두현 변호사 2023. 5.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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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백년 전 사고방식…집회와 파업을 ‘죄악시’
‘노가다’라며 무시하더니 고용 요구가 중범죄인가
김두현 변호사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 “차 세워, 빨리!”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 2004년 방영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지섭은 차를 세워달라는 임수정의 말을 무시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강요죄가 성립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강요죄인데, 소지섭은 달리는 차에서 “같이 죽을래?”라고 협박하여 ‘의무 없는 일’인 밥 먹기를 강요했다. 소지섭은 강요죄로 처벌받아야 할까?

요즘 건설노조에 대한 국가의 광기가 무섭다. 보통 범죄수사는 피해자 고소에서 시작되는데 건설노조 수사는 고소 여부와 무관하게 광역경찰청 단위에서 대대적인 인지수사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경찰이 특진을 내걸고 건설업체들에 고발을 종용한 정황도 보인다. 경찰이 건설사 현장소장들에게 “채용 안 하면 집회를 하겠다 등 노조원이 겁을 준 내용을 작성해 주시면 좋다”고 적힌 고발장 예시 문건을 돌렸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건설현장 특별단속과 관련해 내건 특진은 50명이다. 전세사기 특별단속 특진 30명보다도 많다. 어지간한 건설노조 간부들은 출석요구서와 압수수색을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있다. 수사 역량의 집중도만 보면 33년 전 군인 출신 대통령이 전국의 조직폭력배를 일망타진한다며 벌인 ‘범죄와의 전쟁’이 떠오를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지칭할 때부터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건설노동자들이 정말 조폭만큼 잘못했을까. 검경이 적용 중인 혐의를 요약하면, ‘집회 파업’을 계속하겠다고 건설업체를 ‘협박’하여 ‘의무 없는 일’인 ‘조합원 채용, 월례비,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회와 파업은 모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원래 상대방에게 ‘법적 의무 없는’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생각해 보라. 그간 사람들은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건설사가 우리 동네 교통혼잡 문제를 해소할 때까지, 사장이 물러날 때까지 ‘집회’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대통령 하야와 교통해결, 사장 퇴진은 모두 그들에게 법적으로는 의무 없는 일이다. 법적의무를 발생시키려면 탄핵을 하거나, 민사소송을 하거나, 주주총회에서 해임결의를 해야 한다.

파업도 마찬가지다. 전국 모든 노조는 ‘의무 없는 일’인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공장을 세워버리겠다(파업하겠다)”고 협박하지만 아무도 처벌되지 않는다. 집회와 파업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적법한 권리행사이기 때문이다. 집회와 파업이 불법인 시절도 있었다. 수백 년 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국가에서 합법이다. 오히려 집회와 파업을 방해하면 그게 불법이고 범죄다. 그런데 요즘 건설노조를 대하는 국가 태도를 보면 이대로는 집회와 파업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행위를 모두 죄악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 헌법이 없던 수백 년 전 사고방식이다.

그래도 ‘채용요구’는 우리 사회의 공정·정의 관념에 반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건설현장은 경쟁공채를 하지 않는다. 경쟁은커녕 오히려 우리 사회는 ‘노가다’라며 건설노동자를 무시했다. 그런 건설노동자들의 제일 큰 문제는 고용불안이다. 건설공사는 몇 개월 단위로 이뤄지고 공사가 끝날 때마다 이들은 실직한다. 단기 기간제 계약이 반복되니 약자인 ‘을’ 정도가 아니라 ‘병’ ‘정’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건설업체가 바쁘다며 추가수당도 없이 불법적인 야근을 요구해도, 안전장치도 없는 불법현장을 만들어놔도 일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매년 수백 명씩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유다.

노조를 만들어 적정 임금과 산업안전보건법 준수를 요구했더니 업자들은 노조원을 채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건설노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고용요구다. 건설현장이 바뀌어도 조합원을 배제하지 말고 재고용하라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큰 죄악인가. 조폭처럼 전쟁 치르듯 국가수사력을 총동원해 짓밟고 모조리 구속해야 할 일인가.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이야 말로 협박이고 강요다. 2023년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이다.


그래서 소지섭은 강요죄가 될까? 달리는 차에서 “같이 죽을래?”는 집회나 파업과 달리 적법한 수단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임수정에게 달렸다고 본다. 임수정이 특별히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면 죄가 안된다. 하지만 임수정이 실제로 위협을 느꼈고, 그래서 경찰서에 고소했다면 죄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밥 먹기’는 의무 없는 일이긴 해도 사회통념상 범죄로까지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검사라면 강요죄보다는 법정형이 낮은 협박죄를 적용하여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하되, 임수정의 처벌의사나 소지섭의 반성의 정도에 따라 기소유예 처분을 할 수도 있다. 이게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싶지만, 건설노동자의 강요죄 적용도 고민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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