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윤의 대안 모색] 밥의 길, 쌀의 미래

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 2023. 5.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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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

나는 밥을 하루 세끼 빠뜨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일이 바빠 때를 놓쳤을 경우도 어지간하면 집으로 돌아와 밥을 챙긴다. 한 끼라도 거르면 아쉽다 못해 허전하다. 어쩌다 뷔페에서 식사할 일이 생기면 이것저것 포만감이 들 정도로 먹고도, 따듯한 밥 한 그릇 생각이 간절하다.

이런 나를 시중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탄수화물 중독’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탄수화물의 대명사가 된 밥에 언젠가부터 ‘나쁜 식품’이란 딱지가 붙었다. 밥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속설이 횡행하면서 어느새 비만의 주범이 되어버렸다. TV 방송이나 신문 지상에서 식품영양학자나 의사 등 이른바 전문가라는 이들이 나와서 탄수화물을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으로 몰며 대체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꼬리를 문다.

한때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으로 서구식 식습관, 과도한 육류 섭취나 패스트푸드 등 육가공 식품을 꼽은 시절이 있었는데 금석지감이 든다. 돈 되는 식품산업에 발을 담근 자본의 농간이든 세태에 따른 입맛의 변화 때문이든, 우리의 밥은 ‘저탄소 고지방식’이란 해괴한 바람에 밀리며 찬밥신세가 됐다.

‘세끼 밥이 보약’이란 옛말처럼 밥은 우리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아니 그를 넘어 햇살과 비, 바람 등 우주의 기운이 모이고 농부들의 정성이 스며 순환하고 상생하는 ‘이천식천’의 밥이다. 이처럼 밥은 오랜 세월 우리 몸에 영양을 공급하고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 왔다. 젖을 뗄 무렵 쌀죽 이유식에서부터 육신이 쇠잔해진 삶의 끝자락에 드는 미음까지 쌀은 우리의 평생을 보듬어 온 영혼의 식량이다.

그러한 쌀과 밥이 왜 비만의 주범으로 홀대당하는 것도 모자라 혐오받는 식품으로 전락했을까. 비만증 환자들에게나 적용됐던 쌀밥의 당질 문제가 오해와 편견으로 일반화된 영향이 크다. 무엇보다 식문화의 변화 등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족이 분열되고 경제활동 양상이 바뀌면서 종래 집밥의 형태가 변하고 사라지고 있다. 맞벌이 가구와 일인 세대가 늘어나면서 국과 반찬까지 갖춰야 하는 밥상이 번거롭고 부담이 됐겠다. 또 잦은 외식과 혀끝을 황홀하게 자극하는 온갖 가공식품, 배달 음식들이 밥의 위상을 흔들지 않았을까.

이러니 쌀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겠다. 지난해 한 사람이 먹은 쌀의 양은 56.7㎏이다. 30년 전인 1992년의 112.9㎏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었다. 반면에 작년 한 사람당 돼지·소· 닭 육류소비량은 58.4㎏으로 쌀소비량을 추월했다. 밀가루 소비량도 해마다 늘어 32㎏에 이르렀다.

쌀 소비의 감소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의 식량을 지켜온 농민에게 직격탄이 됐다. 작년에 쌀값 파동이 일면서 벼농사를 짓는 농민이 벼랑으로 내몰렸다. 쌀값의 폭락으로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농사에 대한 회의감이 어찌 들지 않았겠는가. 쌀값 파동을 나 몰라라 하면서 ‘시장 만능’을 떠벌리는 나라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또한 컸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비약적 경제성장에는 쌀이 중심이 된 농업의 희생이 버팀목이 됐다. 저임노동을 바탕으로 한 수출 전선의 보국대 노릇을 하면서 이 땅의 경제를 살찌워 온 쌀이 내팽개쳐지는 현실에 농민의 자괴감은 어떠하겠는가.

그나마 기대했던 제도적 보완, 벼농사에 대한 최소한 보전과 식량자급의 토대를 지키려는 양곡관리법 개정이 거부되는 현실에 얼마나 절망했을까. 식량자급마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농민이 걸었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라가 쌀, 식량자급을 지키지 못할 때 먹거리의 앞날은 한순간에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적인 기상 상황이 식량수급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한 글로벌 식품자본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기후위기와 자본의 탐욕에 맞서 우리 스스로 식량자급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4.4%에 그쳤다. 30년 전 61.3%에서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이제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그러나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식량자급에 정부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돈만 있으면 모자란 곡물을 얼마든지 수입할 수 있다는 무모한 생각에 빠져 있다. 조선이나 건설업의 부진에는 나라의 곳간을 열고 천문학적 예산을 퍼부으면서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쌀을 비롯한 농업의 문제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위기에 처한 밥과 쌀의 문제는 시급한 현안이다. 우리 모두 곱씹어 살펴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식량자급의 바탕인 논을 지켜낼 것인가, 허물어지는 밥상을 살릴 방안이 무엇인지 근원적 고민이 필요하다. 정제된 탄수화물로서 백미에 문제가 있다면 잡곡으로 보완하고, 밥상이 번다스러우면 간편하게 재구성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아이들의 입맛은 어떻게 살려내고 지켜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절실한 시점이다.


오랜 세월 우리는 밥심으로 살아왔다. 밥심을 제공하는 밥상을 되살리는 일이 우리 쌀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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