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모범답안 사회'를 이젠 벗어날 때
수업에 앞서 교수들은 강의계획서를 설명한다. 수업목표, 학습내용, 평가방식이 포함되는데 학생들은 대개 평가에 관심을 둔다. 수업 중 발표를 준비할 때 미리 찾아와서 묻는 학생이 있다. 출제 의도에 맞춰 답안을 작성하고 발표를 준비하려는 '모범학생'들이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튀는 관점을 제시하거나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삐딱한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왜 학생들은 모범답안에 집착할까. 아마도 학교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는 시험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습관적 반응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미래세대를 틀에 갇힌 인재로 키우는 셈이다.
공직자를 뽑는 면접에 참여했다. 응시자들은 대부분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나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누군가 튀지 말라고 조언했을 법하다. 질문에 답할 때도 찬성과 반대의견을 제시한 후 절충의견을 내는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를 택했다. 자기 생각이 담긴 의견을 내기보다 실수를 피하는 전략이다. 집단면접도 마찬가지였다. 적극적인 주장, 날카로운 반론, 격렬한 토론은 부족하고 서로 짜맞춘 듯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많았다. 괜스레 튀는 의견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작전이다. 공직이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면, 그릇을 깨는 참신한 사고가 필요 없는 곳이라면 별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혁신적인 정책과 행정서비스를 기대한다면 안전한 길을 선호하는 사람을 공직자로 임용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등록금 말고 별다른 수입이 없는 대학이 기댈 곳은 정부사업이다. 정부사업의 재원이 세금인 만큼 엄정한 선정평가가 불가피하다. 그래서인지 대학들은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쓰면 교육부가 좋아할지'를 고민한다. 최고의 지성과 전문가들이 모인 대학조차 모범답안에 얽매이는 꼴이다. 이런 탓에 대학이 처한 여건이나 비전이 다름에도 평가지표를 좇는 '붕어빵대학'이 늘어난다. 정부가 제시한 틀에 맞춰 답을 쓰는 대학에서 어떤 교육이 제공될지 분명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자신감을 잃은 대학에서 진취적 기업가정신을 갖춘 인재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범답안은 '본보기가 되는 답안'이다. 자기 생각보다 출제 의도가 중요하다. 독창적인 접근보다 교과서적 틀을 따른다. 모범답안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여러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시간낭비로 여긴다. 이런 식의 표준화와 규격화 전략은 빠른 성장을 추구하던 대량생산 시대에 적합한 방식이다. 변화의 선도자보다 '빠른 추격자'에게 효과적이다. 학교에서 모범답안을 강조할수록 지적 호기심은 사라지고 '다르게 보기'는 허락되지 않는다. 즉, 하나의 정해진 답을 찾게 만드는 교육과 평가체계에서는 용기를 내어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이 나오기 어렵다.
어느 방송사의 '팬텀싱어'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비록 음악은 몰라도 이탈리아 가곡, 고전 성악곡, 현대 팝뮤직, 국악의 세계를 넘나드는 참신한 시도와 기존 틀을 깬 창의적 접근을 하는 팀이 우승할 것이라는데 한 표를 던진다. 진부한 모범답안은 감동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교육도 변화할 때다. 나와 다른 생각을 경청하고 여러 대안의 탐색을 권장하는 교실이 돼야 한다. 하나의 정답을 찾게 하는 '문제풀이' 시험을 줄이고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통해 교훈을 찾는 '과정 중심 평가'를 확대해야 한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자본(Creative Capital)이론'에서 도시발전의 조건으로 3T, 즉 인재(Talent) 관용(Tolerance) 기술(Technology)을 제시했다. 특히 관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어느 조직이든 창의와 혁신이 꽃을 피우려면 다른 사고, 주장, 접근을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실 실패'에 손뼉을 치고 다음 도전을 밀어주는 교실에서 혁신인재가 나온다. 이제 '모범답안 시대'를 벗어날 때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서울시 교육명예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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