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미래] 그들이 노동개혁에 저항하는 이유
노동조합은 이를 지탱한 지렛대
견고한 성 밖에 中企·비정규직은
권리 지켜줄 정치도 제도도 부재
196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9달러, 일본과 미국은 각각 425달러, 3007달러였다. 지난 60년간 일본은 우리와 비슷해졌고, 무려 38배 차이 나던 미국과의 격차는 2배 이내로 줄었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세대는 1인당 GDP 90달러 시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500달러 무렵 근대화 주역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 그들은 수출 100억달러, 1인당 GDP 1000달러 시대를 만들었으며,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가 되었다. 1인당 GDP 1900달러의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1994년 1만달러 시대가 열렸으나 대학에 입학하던 무렵 외환위기를 만나 8000달러로 추락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인 1950년대 세대는 외환위기로 파산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40세를 넘긴 이들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후 최초의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으며, 그 무렵 직장에 진입한 30대 초중반 ‘386세대’는 40대들이 비워 놓고 간 자리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노동시장 분단의 중요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무렵인 1977년부터 10년의 경제성장률 평균은 9.1%였으며, 1985년부터 1995년까지의 성장률 역시 9.4%였다. 1980년의 경제위기가 있었지만 성장을 회복하는 데 오래 결리지 않았고, 노동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일자리가 계속 늘었고, 기업특수적 숙련에 기반한 내부 노동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대기업의 성과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이끌었고, 이에 편승해 중산층이 두터워졌다.
하지만 1997년 경제위기는 노동시장의 구조를 근본에서 변화시켰다. 정리해고의 홍역을 치른 대기업 노조는 임금과 근로조건에 집착했고, 내부 이해관계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비용은 하청기업에 전가되었다. 정리해고의 어려움을 경험한 대기업이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기업은 시장의 부침과 물량변동에 대응해 연장근로를 활용한 근로시간 조절과 비정규직을 통한 양적 유연화 등의 두 가지 전략으로 대응했다. 1998년부터 2021년의 성장률은 3.8%, 2011년부터 2021년의 성장률은 2.7%까지 떨어졌다. 더는 대기업의 적극적인 고용 확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정규직 일자리의 확대를 강제할 방법도 없다.
결국 지난 25년 노동시장은 대기업 노사의 담합과 카르텔이 재생산된 공간이었으며, 노동시장 제도와 노동조합은 이를 지탱한 지렛대였다. 경쟁에서 승리한 대기업·공공기관 MZ세대의 기득권도 알고 보면 586세대의 카르텔이 만들어준 결과물이다. 견고한 담합의 성 밖에 중소기업,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가 존재하며 이들을 지켜줄 정치와 제도는 부재하거나 취약하다. ‘노동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하청의 위계에서 중층적 단가 압박에 노출된 사업가들, 의지할 곳이라고는 근로기준법밖에 없는 노동자들 때문인데, 이마저 기득권의 저항에 막혀 있는 상황이니 답답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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