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뉴웨이브 in 강릉] 2. 아트센터에 넘치는 예술과 시민의 파도

심상복 2023. 5.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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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에 흐르는 예술 DNA 시민 문화의식 활짝
2018 동계올림픽 열며 건립된 아트센터
클래식·국악·합창 등 예술공연 ‘새바람’
시 인구 10% 아트센터 회원 ‘관심 반증’
센터 기둥 강릉시향 해외투어차 일본행
단원들 “정민 상임지휘자 일궈낸 작품”
아트전시장선 영국 두 거장 작품 전시도
▲ 정민 강릉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와 단원들이 24일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음악이란 모양과 쓰임새가 달랐어도 인간의 뇌 속에 분자 형태로 녹아 있음에 틀림없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인류문화유산 강릉 단오제도 이 땅의 소리와 악기로 한민족의 삶을 지켜주고 위로해준 친구였다. 이맘때 열리던 단오제가 올해는 윤달이 끼어 한 달 정도 늦어졌다. 6월 18일 개막해 여드레간 이어진다. 들썩임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5월12일부터 오후 6~11시 갖가지 먹거리에 흥이 더해진 월화거리 야시장이 개장했다. 25일부터는 ‘강릉은 극장이다’이란 타이틀 아래 난장 같은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작가(허균)가 주인공(홍길동)을 불러내 모험을 펼치는 ‘목소리의 주인’이란 판타지 사극이 27일 강릉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음악무용극으로 푼 사임당 이야기, 강릉 대표음식 옹칼(옹심이+장칼국수)을 소재로 한 다이닝 공연도 펼쳐진다. 전통과 민속이 지배하다가 전혀 다른 색깔의 음악이 출현하기도 한다. 6월 25일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 콘서트가 그런 예다. 애니메이션의 명장 미야자키 히야오 작품의 씨줄이 되었던 그 음악들이다. 7월 3~13일에는 ‘2023 세계합창대회’가 열린다. 코로나를 극복한 세계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 강릉아트센터 전경

이런 풍성한 공연과 음악이 2018 동계올림픽 덕이라고 하면 의아해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강릉은 빙상경기를 개최하며서 두 가지 큰 혜택을 입었다. KTX와 아트센터다. 아트센터는 철과 시멘트로 된 물리적 시설이지만 그 덕에 강릉엔 예술공연의 뉴웨이브가 일기 시작했다. 동계올림픽과 이어진 패럴림픽 40일간 아트센터에서는 매일 1~3건의 공연이 벌어졌다. 클래식, 성악, 국악, 앙상블, 합창 등 실로 다채로운 행사였다. 외국 선수와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강릉 시민들도 열심히 드나들었다. 넓은 객석이 휑하면 올림픽 개최도시로서 면이 안 서 의무감 같은 걸 느꼈다고 말하는 시민도 많았다.

▲ 강릉아트센터 전경 2

“그 덕에 강릉 시민들은 ‘문화공연관람 속성과정’을 마쳤다고 봅니다. 하하”

당시 아트센터 기획팀장이었고 현 관장인 심규만씨의 말이다. 공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태도도 올림픽 전후로 나뉜다고 그는 덧붙인다. 현재 강릉 인구의 10%인 2만2000명이 아트센터 회원이고, 그 중 유료회원(연간 7만원)이 1500명이라는 게 증거가 아닐까.

필자가 겪은 작은 에피소드도 있다.

“엄마, 오늘 지젤은 심현희 발레리나래요.”

“그래, 어제는 박슬기씨였지. 오늘은 아무래도 어제와 비교하면서 보게 되겠네.”

지난 2월 11일 토요일 오후 3시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 국립발레단이 강릉에 온다기에 일찍이 예매하고 이날 자리에 막 앉았는데 옆좌석의 대화가 귀에 흘러들어왔다. 가족(부부와 딸)이 두 번의 공연에 다 온 것이었다. 중간 휴식시간에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에게 작은 소리로 물어봤다. 강릉에 사느냐고. 이곳 티켓 값이 서울에 비해 월등히 싸기 때문에 원정관람을 온 게 아닐까 하고 물어봤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작, ‘Untitled(name)

설립 6년째를 맞고 있는 아트센터는 이제 파고를 키워 현해탄을 건너려 하고 있다. 올해 만 서른 살이 된 강릉시향이 역사적인 첫 해외투어에 나서는 것이다. 9월 6일 일본 오사카 심포니홀, 다음날엔 도쿄 산토리홀에 선다. 그것도 시 예산을 쓰지 않고 공연료로 충당하는 투어다. 특히 세계 3대 음악당으로 꼽히는 산토리홀은 국내 음악단체 중에선 서울시향만 딱 한 번 섰던 꿈의 무대다. 단원들은 작년 1월 취임한 정민 상임지휘자가 일궈낸 프로젝트라고 입을 모은다. 그가 이미 8년간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단원들의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시향 첼리스트 윤희영씨는 “부담도 크지만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무대에 선다는 설렘이 더 크다”고 말했다.

▲ 정민 강릉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시향은 아트센터를 이끄는 기함이다. 시립합창단과 더불어 1992년 창단했고, 99년에 전 단원을 상임으로 격상하면서 탄탄한 구조를 갖췄다. 현재 60명의 단원들이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올해부터 정기연주회 티켓 값을 5000원에서 1만원으로 ‘대폭’ 올렸지만 시민들이 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 방증일 듯싶다.

그가 강릉시향을 맡은 뒤 가족(정명훈, 정경화)을 비롯해 백건우, 김선욱 등 스타 뮤지션들이 아트센터 무대를 빛내줬다. 7월 9일에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 공연이 펼쳐진다. 베를린필의 첼리스트 12명과 함께하는 자리다. 7월 15일에는 29세의 걸출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사임당홀의 주인공이 된다.

▲ 정민 강릉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에 살면서 더블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운 정민씨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아들이다. 현재 이탈리아 볼차노 하이든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단원들의 열정과 진심이 강릉시향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믿고 있다. 경포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설악산도 자주 오르며, 단원들과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강릉 생활이 더 없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시향의 주무대인 아트센터 사임당홀은 972개의 객석과 150명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자랑한다.

▲ 로즈와일리 작, ‘Korean Children singing’ 전시 현장

 

기왕 짓는 김에 객석을 1200개 정도로 늘리고, 음향설비를 좀 더 업그레이드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인구 22만 도시에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그래도 한가지 시설은 확실하게 늘린다. 현재 50명이 겨우 설 수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내년 봄에 100명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최대 피트가 된다고 한다. 오페라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정민씨는 그래서 요즘 싱글벙글이다. 독일 대표작곡가 바그너의 초대형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도전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강릉시향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는 언제나 가능하다”고 답했다.

▲ 강릉아트센터 기획전시 포스터

아트센터 메뉴에는 관광도시 강릉에 놀러와 즐기기 좋은 것도 많다. 지난 5월 12~13일에는 아트서커스 ‘블리자드’ 공연이 열렸다. 2회 공연이었는데 예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바로 매진됐다. 올 2월에는 쎄시봉(김세환, 조영남, 윤형주), YB밴드 같은 대중문화 공연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즈가수 나윤선 콘서트가 만석을 이뤘다. 필자도 서울에서 지인들이 오면 “오늘은 강릉의 예술의 전당으로 놀러가자”며 이끌곤 한다.

강원도 유일 예술고인 강원예고도 강릉에 있는데 아트센터는 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역할도 한다. 지난 5월18일에는 강원예고 제57회 전공연주회가 소공연장(385석)에서 열렸다. 아트센터에는 3개의 전시실도 있는데 합치면 거의 1000 평방m에 이른다.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작, ‘Untitled (take away cup),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86세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가 동심은 죽지 않는다고 웅변하고, 다른 쪽에선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를 지도했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미니멀한 그래픽 작품을 선보인다.

▲ 로즈와일리 작, ‘Sausagedog’

인구 22만의 강릉에 국립발레단과 스타 뮤지션, 그리고 레베카(오는 11월)와 같은 인기 뮤지컬이 행차하는 걸 보면 이 도시의 문화 웨이브가 얼마나 역동적인지 알 수 있다.

>>> 심상복 대표

△서울대 경영학과·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중앙일보 뉴욕특파원·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한양대 특임교수·이화여대 초빙교수 △현재 컬쳐랩 심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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