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마을서 시작하는 상향식 공화국으로 대전환이 절실하다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급속한 번영과 지방소멸의 심화가 병행한 점이다. 지방 희생 위의 국가발전이었던 것이다국토균형발전정책과 지방자치는 늘 강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결과는 처참하다
번영을 구가한 민주공화국들은 ‘권력분립을 통한 의회주의’와 ‘지방자치를 통한 연방주의’라는 두 토대 위에서 출발했다
한국은 여건상 준연방주의와 권력분립 대통령제의 결합이 나라와 지방을 살리는 지름길이다
중앙과 지방의 최악 불평등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지방을 인적이 드문 폐허로 만들고 있다
지금 지방을 위한, 그리하여 소멸될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일대 혁명이 시대적 소명이다
대한민국의 지방은 지금 급속한 소멸의 과정에 놓여 있다. 빛의 속도로 성장한 한국이 빛의 속도로 소멸할지도 모른다. 소멸 위험지역의 숫자와 비중은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다.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다면 지방의 소멸 위험지역 비중은 평균 82%에 달한다. 10개 중 무려 8개가 소멸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아이를 낳으려면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곳도 허다하다. 응급환자는 치료를 받을 병원이 없는 곳도 너무 많다. 이미 지자체의 4분의 1에는 소아과가 없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대학교의 폐교와 신입생 모집 중단은 이제 너무 많고도 익숙하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급속한 번영과 지방소멸의 심화가 병행하였다는 점이다. 지방 희생 위의 국가발전이었던 것이다. 국토균형발전정책과 지방자치는 늘 강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결과는 처참하다.
너무나 많이 언급된 권력과 돈, 기업과 교육의 수도권 집중은 말할 필요도 없다. 법률? 개업변호사의 85%는 수도권에서 영업을 하며 전국 지방변호사들의 규모는 1~2위 로펌을 합친 정도에 불과하다. 의료? 서울의 5대 대형병원은 질병에 따라 지방환자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언론? 15개 지방신문의 전체 매출액은 선두권 중앙일간지 단 한 곳의 매출액보다 훨씬 적다. 금융? 4대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예금과 대출 모두 80%에 달한다. 유통과 교회? 마찬가지다. 이런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서울은 나라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 공룡 차원을 훨씬 넘는다. 민주공화국 이론들이 가장 우려한 ‘나라 안의 나라’요, ‘과두 성층권(成層圈)’인 것이다.
먼저 인구 이동 통계를 보자. 1970년 기준 수도권의 인구는 912만5758명이다. 지방은 2311만5069명이다. 당시 전국 인구는 3224만827명이다. 지방이 2.5배 정도 더 많다. 그런데 한국의 인구가 정점을 찍는 2020년 수도권의 인구는 2602만1282명인 데 반해 지방은 2581만4957명이다. 전체 한국의 인구는 5183만6239명이다. 50년 동안 지방 인구가 소폭인 269만9888명 늘어나는 동안 수도권은 무려 1689만5524명이 증가하였다. 증가한 전체 인구 1959만5412명의 압도적 다수가 수도권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수도권의 인구증가율도 시간이 갈수록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1970년대 4% 증가를 거쳐, 1980년대 전반의 3%,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전반의 2%,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의 1%, 그리고 2010년대의 0%대를 거쳐 마침내 2022년에는 수도권의 인구증가율도 0.00%를 기록한다. 비록 소수(1044명)이지만 절대 숫자로는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조차 감소로 돌아섰다. 지방은 50년 내내 일관되게 0%대의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였다. 한국의 전체 인구 증가는 곧 수도권 인구의 증가를 의미하였던 것이다. 전체 인구조차 2021년 마침내 감소세로 돌아섰다.
민주화 시기에도 수도권 집중 뚜렷
수도권 인구 증가에 가려져 있지만 주목할 만한 현상은 서울의 인구 변동이다. 산업화의 기점인 1961년 서울 인구는 258만4952명, 전국 인구는 2576만5673명이었다. 서울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1991년 직전 해(1990년)의 서울 인구는 1047만3252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때까지 증가한 전국 인구 1710만3610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788만8300명이 서울에서의 증가였다. 이후 지금까지 서울 인구는 106만1809명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서울의 인구 감소는 수도권 팽창, 즉 서울 확대의 다른 표현이었다. 서울 인구가 감소하는 그 시기(1991~2022년) 동안 수도권 인구는 771만894명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서울에 이어 경기도 지역이 마치 또 하나의 서울처럼 본격적으로 개발된 시기였다. 여러 신도시와 대규모 아파트단지 조성과 택지개발이 집중되었고, 세계적 규모의 각종 첨단기업들과 사회기반시설들이 들어섰다.
한국에서 민주화와 민주주의 시기는 산업화와 권위주의 시기 못지않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인구의 인공적 흡수 시기였다. 한마디로 일관된 중앙 집중화와 중앙 팽창이 한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뚜렷한 특징이었다. 그 시점에 서울 주변 도시들과 경기도의 인구 팽창은 앞 시기 서울의 그것을 빼닮았다. 일례로 용인시는 10만명대의 인구가 1.5세대 만에 100만명대로 급팽창하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10만명에서 20만명으로의 증가에 걸린 시간과 20만명에서 100만명으로의 증가에 걸린 시간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빛의 속도로 팽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원·고양(일산)·분당·화성·동탄·평택의 인구 팽창 속도 역시 유사했다.
개인들의 집합적 구성 단위와 숫자를 의미하는 인구는 기본적으로 삶의 안전과 안정, 자기실현과 발전을 위한 기회와 자원을 따라 이동한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인구 증감 역시 삶의 기회와 안정이 보장되는가 여부에 따라 엇갈린다.
한국의 인구 구성의 변동과 이동처럼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다. 앞의 인구 기준연도인 1970년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은 37%(서울 26.7%, 경기 10.3%)였다. 지방의 지역내총생산은 63%였다. 지방이 압도적으로 높다. 1990년, 2000년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내총생산은 각각 47.3% 대 52.7%, 48.4% 대 51.6%를 거쳐 2020년에는 52.7% 대 47.3%가 되었다. 완전한 역전이다. 인구와 마찬가지로 지역내총생산 역시 애초부터 수도권 집중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인구 지표와 지역내총생산 지표의 연동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의 최악의 모습이 무언가 우리들의 잘못된 정책의 산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상세통계가 시작되는 1985년을 기준(100%)으로 할 때 2021년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은 2737%가 증가한 데 비해 지방은 1899%가 증가하였다. 838%포인트 차이가 난다.
사회구조 산물 아닌 작위적 선택
지역내총생산의 시·도별 비중을 보면 지방소멸이라는 참상의 원인이 더욱 분명해진다. 1985년 기준 서울은 25.23%였다. 경기도는 13.88%였다. 둘은 2021년 각각 22.72% 대 25.38%다. 경기도의 증가율은 놀랍다. 이들을 제외한 부산·대구·강원·충북·전북·전남·경북의 장기적인 감소 추세는 확연하다. 최근 들어서는 경남은 물론 울산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는 산업화 시기의 최대 수혜지역조차도 못 버틸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극도로 심화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울산을 제외하면 특히 지방도시들의 피폐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전국(100%) 대비 1인당 지역내총생산을 보면, 부산 73.9%, 대구 63.5%, 광주 73.7%, 대전 78.2%로 수도권은 물론 지방 도 단위 지역들보다도 훨씬 낮다. 이 수치들은 이들 지역으로 하여금 장차 대한민국 갱생을 위한 혁명의 중심지가 되게 할 지표일지도 모른다.
지역내총생산 시·도별 비중의 변동을 보면 특정한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한편으로는 수도권의 일관된 증가와 더불어, 다른 한편 세부적으로는 서울(경기도 증가 이전까지), 경남(울산 포함·1990년대 말까지), 경기(계속 증가), 충남(대전 포함·균형발전정책 이후)의 순서로, 비중이 확실히 커지는 사이클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따른 산업단지와 기업 배치 그리고 지방균형발전의 수혜라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의 지역별 인구 변동은 정부 정책과 국가발전 과정의 산물이었다. 결론부터 말해 지금의 지방소멸은 사회구조의 산물이 아니라 정책과 예산, 교육과 기업을 포함한 대한민국 공동체의 작위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신도시 건설 시기는 수도권이 급팽창한 때이며, 특히 경기도 인구가 크게 증가한 때와 일치한다. 수도권의 집중개발과 지방의 폐허화는 같이 간 것이다. 지방에 기회가 없어서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게 아니다. 분명 존재하고 있던 지방의 기회와 가능성을 박탈하여 수도권으로 몰아준 탓에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국가의 발전과 지방의 폐허가 병행한 이런 방식은 중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 넓지도 않은 영토에, 고속도로와 기반시설, 운반수단, 정보화가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더 이상 비용과 효율성을 명분으로 신도시와 학생 증원, 공장 건설을 수도권에 집중하는 실책과 오류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 농촌은 도시의, 지방은 수도권의 탯줄이다. 강원도의 물과 자연, 호남과 영남의 곡식과 채소, 제주의 바다와 해산물 없이도 우리가 계속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망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곳에 물과 산이 없고, 식량과 가축과 채소를 기를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수도권 역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 생존과 번영을 구가한 민주공화국들은 ‘권력분립을 통한 의회주의’와 ‘지방자치를 통한 연방주의’라는 두 가지 토대 위에서 출발하였다.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실천해야 한다. 거기에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동시 발전을 위한 길이 있다. 생존과 지속, 발전과 번성을 위한 연속 상향식 민주공화정을 말한다. 한국의 지방과 나라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위기 극복을 위해 깊이 고려할 때다.
마을과 동네, 면과 구, 시와 군을 비롯한 삶의 기초 단위는 인간의 행복·교제·교육·재산·치안 등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나라가 담당하는 전쟁과 국방, 외교와 안보, 무역과 통상을 빼면 인간 삶의 필수 요소들은 기초 단위에서 이뤄진다. 요컨대 주민과 국민이라는 두 실존과 가치, 두 지향과 과제를 어떻게 함께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민주공화국과 의회민주주의, 지방자치와 지방재생의 가장 중요한 연결지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공화국 개념과 체제를 제시한 선현들은 한결같이 마을과 지방 중심의 나라를 제안한다. 민주주의 자체가 평민·민중의 지배를 뜻함과 동시에 마을의 자기지배, 즉 마을자치를 의미했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을 창안한 철인과 지도자들은 마을에서 시작하는 상향식 공화국을 제안한다. 그들은 마을 → 면 → 군 → 도 → 국가로 이어지는, 상향식 공화국이 최적·최고의 민주공화국임을 강조한다. 이들 각각의 단위를 모두 ‘나라’ 또는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즉 마을공화국, 면(面)공화국, 군(郡)공화국, 시(市)공화국, 도(道)공화국, 국가공화국·연방공화국을 말한다. 마을 단위의 기초가 죽는다면 면과 군, 도와 국가는 생존할 수 없다. 삶의 시작이자 터전인 마을과 동네, 면과 군, 동과 구를 먼저 살려야 하는 까닭이다. 그들이 죽는다면 나라도 따라 죽는다.
상원 설치로 의회 규모 확대해야
따라서 나라의 제1 요소인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다양한 자율적 마을·도시·지방·지역들을 단일한 중앙으로 흡수하여 모든 것을 위로부터 통제하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쟁이나 질병, 자연재해로 인한 인구 감소는 회복의 길과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체제 자체의 결함이나 선택으로 인한 위축과 폐허는 거의 불치병이었다. 일방적인 하향식 체제가 계속 멸망하는 모습을 본 인류가 상향식 자치체제를 뜻하는 민주공화국을 정초한 까닭이다. 그 길밖에 없다. 상향식 민주공화체제를 채택하지 않고 멸망해간 사례들에 대한 탐구는, 그리고 오늘의 선진 민주국가들의 나라 모습에 대한 고찰은 지방이 살아야 중앙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마을이 각자의 수도이고, 국가의 모든 부분이 중심이면 지방과 나라는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
강조컨대 지방과 나라를 함께 살리는 바람직한 민주공화국의 길은 연방주의와 의회주의를 결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연방주의와 의회주의의 길은 하나조차도 쉽지 않다. 철저한 중앙 단방주의에 더해 대통령 1인 권력독점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연방주의와 의회주의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최소한 준(準)연방주의와 권력분립 대통령제의 결합이 나라와 지방을 같이 살리는 지름길이다.
먼저, 중앙과 지방의 수직적 권한 배분 못지않게 수평적 권력분립이 필수다. 지방 자율은 반드시 중앙의 권력분립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이중분립을 위해 상원의 설치를 통한 영토대표와 의회 규모 확대가 필수다. 상원의원의 숫자는 인구가 대규모인 지방과 소규모인 지방이 같거나, 최소한 2 대 1을 넘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지방 역시 대등한 정부 구성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지방의회’(헌법 118조 2항) 및 ‘지방법원’(법원조직법 제3조)의 위상과 명칭에 맞추어 일관성을 위해 지방자치단체(헌법 8장. 117조. 188조)는 ‘지방정부’로 바뀌어야 한다. 입법기구와 사법기구는 의회와 법원인데 행정조직만 자치단체라는 명칭은 맞지 않는다.
셋째로 행정부의 명령은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에 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헌법 75조). 지방의회의 조례를 일개 행정부의 명령이 헌법을 초월하여 규제하는 현실은 반복되어선 안 된다. 즉 헌법 95조의 개정이 필요하다. 지방자치에 관한 헌법 조문 제117조 역시 ‘법령’에서 ‘법률’로 개정해야 한다.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문제다? 중앙정부와 수도권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지역내총생산의 비율에서 지방이 압도적으로 큰 기간 동안 지방의 재정을 대체 어디에다 썼길래, 당시 지역내총생산의 규모가 훨씬 작은 수도권은 고속 발전하고 지방은 퇴락했는가? 답을 해보라.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 외형과 실질은 지방소멸에서 보듯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민주공화국의 설계사들은 중앙과 지방, 입법부와 행정부, 국가와 국민, 다수와 소수 사이의 균형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근간이라 말한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중앙도, 상층도, 강자도, 나라도 버티지 못하였다. 어디서나 고질적인 불평등은 갈등의 뿌리이자 패망의 근원이다. 우리는 이제 불평등을 계층문제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중앙과 지방의 최악의 불평등 역시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지방을 인적이 드문 폐허로 만들고 있다. 지방이 폐가와 폐교와 폐촌으로 뒤덮인다면 머지않아 수도권도 그리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방을 위한,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위한 일대 혁명이 절실하다.
필자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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