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민 실질소득·성장률 동반 하락, 이래도 긴축 고집할 건가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올 1분기 실질소득 증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서민 살림살이는 오히려 후퇴했다. 특히 소득 하위 20% 가구는 역대 최대인 월 46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가구 월평균 명목 소득은 505만4000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4.7% 늘었지만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458만원으로 같았다.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 부작용이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정부 보조금 등이 줄면서 빈부 격차는 확대됐다. 전체 소득에서 세금·사회보험료 등을 뺀 처분가능소득(명목)이 상위 20% 가구는 886만9000원으로 4.7% 증가했으나 하위 20%는 85만8000원으로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분배 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45로 지난해 1분기(6.20)보다 0.25포인트 상승했다. 이 지표는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을 가구원 수로 나눈 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몇 배인지 계산한 것이다. 배율이 높아질수록 빈부 격차가 크고 분배가 나빠졌다는 의미다. 소득에서 지출을 뺀 가계수지도 상위 20% 가구는 월 374만4000원 흑자였지만 하위 20%는 46만1000원 적자였다.
한국은행은 이날 기준금리(연 3.5%)를 동결하고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하향했다. 지난 2월 전망치 1.6%에서 3개월 새 0.2%포인트 낮춘 것이다. 당초 한은과 정부는 하반기로 갈수록 경제가 호전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수출이 반도체 중심으로 감소세가 지속되고 19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로 인해 내수 역시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소득이 늘려면 무엇보다 고용이 개선돼야 하지만 지난해 80만명대였던 취업자 수 증가폭은 올 들어 20만명대로 급감했다.
경제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땐 정부가 단기적으로 지출을 늘려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도 “국가채무의 빠른 증가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 낭비를 줄이고 운영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중요하지만, 지금은 재정을 풀어야 한다. 재정을 옥죄면 경기 회복이 늦어지고 복지 투자가 줄어 서민들 삶이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가 강조하는 노동·교육·연금 구조개혁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 부채가 늘긴 했지만 한국의 재정은 여유가 있다. 더 늦기 전에 경제에 숨을 불어넣고 적자 가구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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