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물·흙·공기 어디서나 채취하는 DNA 조각… 당신의 비밀 추적할 수 있다

박건형 테크부장 2023. 5. 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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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의 홀리테크] 급속도로 발전한 eDNA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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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의균

10년 전 유전학자들이 야생동물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한 무리의 포식자들이 어떻게 특정 지역을 점령하는지,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지는 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동물은 어떻게 찾아내는지 같은 것들이 이들의 궁금증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방법은 모든 생명체가 남기는 유전자(DNA)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환경DNA(environmental DNA·eDNA)로 불리는 이 유전 물질은 강이나 바닷가 모래,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 꽃에서 채취한 꿀, 사람이 마시던 차 같은 곳에서 발견됩니다. 지난 10년간 eDNA 조각을 모아 복구하고 이를 분석하는 시퀀싱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2020년 웨일스와 잉글랜드 경계에 있는 강에서 이미 멸종된 것으로 선언됐던 스톤플라이(돌파리)의 eDNA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확신을 가진 과학자들은 그 일대를 뒤져 실제 스톤플라이 유충을 찾아내 성충으로 자라는 과정까지 확인했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죠.

eDNA 기술은 코로나 시대에도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가 상하수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eDNA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수집한 eDNA 안에 인간의 DNA가 섞여 있고, 이를 너무나 쉽게 복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랑에서 퍼낸 물에서 나온 DNA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지난 1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자연생태 및 진화’에 발표한 논문에서 “환경에 남아있는 인간 DNA의 미세한 조각에서 개개인의 의학 및 조상 정보를 복구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인간의 DNA가 자연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eDNA는 너무 작고 열화돼 있어 분석 자체가 힘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누군가의 혈흔이나 입을 댄 컵이나 껌에서 온전한 DNA를 채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이죠.

모든 동물은 자신이 머물던 자리에 유전자(DNA) 흔적을 남긴다. 물속이나 대기 중에 남아 있는 이러한 환경DNA (eDNA)를 이용하면 해당 지역에 머물렀던 생물 종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 /미국 국립공원청(NPS)

하지만 플로리다 연구진이 바다거북의 질병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eDNA를 모으는 과정에서 분리한 인간의 eDNA는 이런 개념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연구팀은 플로리다주 세인트 어거스틴에 있는 개울에서 물 한 컵을 퍼냈습니다. 이어 ‘나노포어 시퀀서’라는 분석 기기를 활용해 물 안의 DNA 조각들을 찾아냈습니다. 이 기기의 가격은 고작 1000달러 수준이고 크기는 라이터 정도에 불과합니다. 분석 결과 수많은 인간 eDNA들이 발견됐는데 개개인의 인종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정보가 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몇몇 eDNA에서 뽑아낸 미토콘드리아 샘플은 미 연방 실종자 데이터베이스에서 일치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했습니다. 동네 도랑에서 퍼낸 물속에서 말입니다.

◇특정 집단 감시까지 사용 가능

연구팀은 실험을 진행하는 중에 여러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예를 들어 eDNA에서 복구한 유전체 중에서는 당뇨병, 심장, 안과 질환의 위험이 높은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eDNA에서는 진행성 신경 장애를 유발하거나 치명적인 희소 질환이 발생할 돌연변이도 있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데이비드 더피 플로리다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이 사람이나 가족이 이런 문제를 이미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면서 “과연 이 사람의 보험 회사는 어떨까”라고 했습니다. 만약 보험 회사가 이런 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eDNA 정보를 모을 수 있다면 가입자 본인조차 모르는 질병의 위험을 미리 알고 보험 심사에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버드대 애나 루이스 연구원은 “지금까지 인간 eDNA는 생명 윤리 전문가들에 의해 논의되지 않았던 부분”이라며 “하지만 eDNA는 특정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데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서 발견한 대량의 eDNA 샘플을 분석하면 지역사회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의 발생 확률을 확인해 역학 조사나 예방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샘플을 특정 소수 민족을 추적해 박해하는데도 악용이 가능합니다. DNA는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모계로 자손에게 전달됩니다. DNA를 분석하고 대조하면 조상이 누구인지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티베트인과 위구르인을 탄압하는 중국 정부가 이 기술을 확보할 경우 더 광범위한 규모에서 치밀한 탄압이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eDNA/유튜브

◇공기에서도 DNA로 사람 식별

물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오슬로대 병원 법의학 연구센터 팀은 공기 샘플에서 채취한 eDNA에서 인간의 DNA를 복구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당시 실험에서 연구팀은 미연방수사국(FBI)에서 용의자 식별에 활용하는 20개의 게놈(유전체) 마커를 완전하게 구성해냈습니다. 특정 장소의 공기를 분석하는 것만으로 그 장소에 누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CC(폐쇄회로)TV가 없어도 말입니다.

다만 아직 물이나 공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eDNA가 머무르는지, 어떻게 확산하고 분해되는지 등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eDNA에 활용되는 나노포어 시퀀싱의 높은 오류율도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eDNA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도전입니다. 공기나 물을 피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환경 속에 자신의 DNA를 남기고, 점차 추적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연구에서는 장갑을 끼고 수술용 마스크와 가운을 사용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도 공기 중에서 eDNA를 성공적으로 분리한 사례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eDNA 논쟁은 이 DNA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의문을 낳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술의 발달은 항상 사회적 합의와 규제보다 앞서갑니다. eDNA 역시 당장은 신기한 기술이고 많은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원이지만, 언젠가 인류를 옭아맬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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