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망설인 코리안리 … 돈줄 마르며 재보험 안방 내줘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3. 5. 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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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유출 진원지, 재보험 中

◆ 국부유출 전원지, 재보험 ◆

국내 유일 전업재보험사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코리안리가 안방인 국내 시장을 해외 재보험사들에 내주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자본 부족이다.

보험사들은 보험상품을 많이 판매할수록 보험금 지급을 대비해 많은 자본을 쌓아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코리안리는 자본금이 영세해 재보험 수요가 급증하는 중에도 사업 확장에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대주주 지분 희석을 우려해 코리안리가 자본 확충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재보험 시장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보험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도 놓칠 수 있다는 평가다. 재보험사는 막강한 자금을 바탕으로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리안리의 지급여력(RBC) 비율은 2018년 211.45%에서 2022년 180.78%로 4년 새 30.67%포인트나 하락했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당국 권고치(150%)를 밑돌 우려도 있다. RBC 비율은 일시에 빠져나갈 수 있는 보험금에 대비해 보험사가 마련해둔 자본을 비교한 수치다.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때 계약자에게 내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다.

해외 주요 재보험사들과 비교해보면 코리안리의 자본 부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보험회사 전문 신용평가기관인 AM베스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상위 30개 재보험사 가운데 코리안리는 보유계약 대비 자본액(주주자본 기준·이익잉여금 미반영) 비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 재보험사 맙프리에 비해서는 보유 계약 대비 자본액 비율이 절반에 그쳤고, 다국적 보험사 피델리스보험과 비교하면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재보험 시장 확대에 대응해 코리안리에서도 올해 초 자본 확대에 나섰지만 시장 경색 탓에 겨우 기대치에 도달했다. 올해 자본 확충을 위해 최대 25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려다 최초 수요 부진으로 액수를 2000억원으로 조정한 바 있다. 이후 추가 수요를 끌어모아 최종적으로 2500억원 증액 발행에 성공했지만, 대주주의 지분이 희석될 우려로 신종자본증권에 매달려야 하는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신종자본증권은 채권 형태로 발행하지만 일반적으로 만기가 30년 이상이고 연장도 가능한 특성 때문에 회계장부상 자본으로 분류된다. 덕분에 보험사들이 자본 확충 목적으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발행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대주주의 지분 희석 우려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탓에 장기적으로는 보험사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미상환 사태다. 통상적으로는 발행사가 조기 상환 옵션을 행사해 5년 만에 돈을 상환해왔는데, 지난해 흥국생명이 발행 후 5년이 도래한 신종자본증권을 상환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자본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결국 흥국생명은 신종자본증권을 활용하는 대신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기로 했고, 같은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급한 불을 끄게 됐다.

이처럼 신종자본증권 대신 자본을 인위적으로 늘릴 수 있는 확충 방안으로는 유상증자가 있다. 그러나 코리안리의 경우 유상증자 선택지가 사실상 배제된 상태다. 태광그룹과 같은 모기업도 없어 자금이 충분히 모집될지 알 수 없고, 대주주 지분율까지 낮아 지분 희석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고 원혁희 코리안리 명예회장의 부인인 장인순 여사가 보유한 5.87%와 아들 원종규 사장이 보유한 4.46%를 비롯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총 19.54%에 그친다. 이 때문에 유상증자로 지분율이 추가 하락할 경우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코리안리 측은 "영업활동 중에 자본의 한계를 느끼는 일이 거의 없다"며 "보험료 수입과 영업이익도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리안리를 단순히 하나의 민간기업으로 간주한다면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코리안리가 국가로부터 수십 년간 독점 권한을 부여받아 성장한 역사를 감안하면, 외국계에 힘없이 국내 시장을 내주고 있는 현 상황을 무책임하게 바라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리안리는 1963년 국영 재보험사인 '대한손해재보험공사'로 출범했고, 1978년 민영화된 후에도 1990년대까지 국내우선출재제도가 유지되며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매일경제신문이 공시 자료를 취합해 계산한 바에 따르면 국내 전업재보험 시장에서 코리안리의 시장점유율은 2022년 기준 55.4%로 4년 새 11%포인트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국내 일반보험사가 해외 재보험에 가입해 지급한 보험료도 두 배 증가해 지난해 5조9460억원을 기록했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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