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이런 車도 모터쇼에 나와?"… 그 9년 뒤
비아냥 받던 중국산 자동차
전기車 앞세워 세계수출 1위로
격세지감 타령만 하고 있다간
한국,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
2014년 3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모터쇼. 당시의 취재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중국의 지리(吉利)자동차가 전시장 한복판에 신차를 선보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이것도 자동차라고 국제모터쇼에 나오나"라는 표정들이었다. 세계 4대 모터쇼에 명함을 내밀었지만 촌스러운 디자인, 허접한 연비 성능 때문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했다.
9년 전 제네바 모터쇼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최근 격세지감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중국이 세계 자동차 수출국가 1위에 올랐다는 뉴스다. 중국은 전년보다 58% 급증한 107만대를 수출했고 2위 일본(95만4000대)을 여유 있게 앞섰다. 눈에 띄는 점은 두 가지. 첫째는 비야디, 창정, 상하이자동차, 창안과 같은 전기차 브랜드가 중국의 자동차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중국 차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의외로 벨기에다. 벨기에는 유럽 최대의 무역항구인 앤트워프를 보유한 나라다. 중국의 전기차들이 앤트워프를 통해 수입된 뒤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자동차도 잘하고 있다고? 반도체가 죽을 쑤고 있는 수출 전선에서 K자동차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대세인 친환경차로 범위를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차·기아는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를 11만9000대 팔았는데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 줄어든 수치다. 반면에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등극한 중국의 비야디는 올해 1분기에만 전기차 56만6000대를 팔아 전년 대비 97%라는 경이적인 신장률을 기록했다. 한국에선 BMW나 아우디, 렉서스만 주로 팔리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중국산 전기차의 막강한 위력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전경련이 얼마 전 발표한 무역특화지수를 보면 2013년부터 최근 10년간 한국산 자동차의 수출 경쟁력이 74.8에서 55.5로 대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100에 가까울수록 수출 경쟁력이 크다는 의미). 친환경차가 대세로 자리 잡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보다 성능, 연비, 디자인이 더 뛰어나고 가성비가 좋은 다른 나라 자동차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세계화 노멀이 깨진 시대, 제조업 공장의 자국 유치 전쟁이 갈수록 불을 뿜고 있다. 미국은 의회가 선봉에 나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자국 본토에 글로벌 기업의 친환경차, 배터리 공장 설립이 몰리는 역대급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전기차용 반도체를 제조하는 기업에 설비투자의 3분의 1을 보조해 주기로 했다. '10년 이상 생산'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파격적인 지원 대책으로 손색이 없다. 산관학이 혼연일체가 돼 대응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멍하게 두 손 놓고 있으면 우리만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5년 뒤, 10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은 리튬, 니켈, 망간 등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희귀 광물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다.
글로벌 시장만 급변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국내 자동차 시장도 중국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비야드, 장링, 체리자동차는 한국 진출을 선언하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불과 9년 전 모토쇼에서 전 세계 기자들에게 실소를 받았던 그 지리자동차는 스웨덴의 명문차 볼보를 인수한 데 이어 얼마 전엔 우리나라 3대 완성차 업체인 르노코리아의 지분 34%를 사들이고 2대주주로 올라섰다. 정작 무서운 일은 아직 시작도 안 된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든다.
[채수환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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