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대기업 재무 ‘마피아’들의 전성시대

황민규 기자 2023. 5. 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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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어렵거나 불황의 그늘이 드리울 때마다 대기업들은 비상경영을 외치며 소위 '재무통'들을 일선에 전진배치시켰다.

한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인텔 제국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최고경영자(CEO)의 극단적인 수익 추구, 재무 중심 경영 속에 전설적인 엔지니어들의 줄퇴사와 기술 경쟁력 악화가 이어졌고, 결국 그가 사임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텔은 무너진 기술 리더십 재건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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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어렵거나 불황의 그늘이 드리울 때마다 대기업들은 비상경영을 외치며 소위 ‘재무통’들을 일선에 전진배치시켰다. 지난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전자·IT를 포함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줄줄이 적자전환했고 재무전문가들의 마른수건 쥐어짜기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졌다.

재무통들이 주도하는 쇄신은 임직원들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공공연하게 삼성전자의 ‘2인자′로 불리는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을 비롯해 삼성 계열사 곳곳에 배치된 옛 미래전략실 출신 재무전문가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낄 수 있는 건 다 아끼라’며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일의 프로세스가 A부터 Z까지 진행되는 동안 어느 구간에서 재무팀의 태클이 들어올 지 모르기 때문에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기가 힘들어졌다”며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어왔던 원칙이 흔들리면서 직원들의 불안감이 높아졌고, 긴축으로 인한 내부 불만 역시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계 1위 DNA’라고 자부해온 삼성전자의 업무 프로세스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랜 기간 세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메모리 사업부 임원들 중에는 최근 수년간 삼성 반도체를 지탱해온 기술 중심 경영의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찾아볼 수 없는 문화가 됐다는 얘기다.

LG그룹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LG는 LG화학을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 LG CNS 등 주요 계열사에 재무통을 승진시켰다.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경우 LG그룹 내 주요 계열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한 재무전문가 정호영 사장을 유임시키며 구조조정을 비롯한 긴축경영의 고삐를 조였다.

최근 LG디스플레이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고 역시 긴축경영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황에 대규모 적자가 겹치면서 임직원들에게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집중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의 대기업식 비상경영은 늘 이런식이었다. 계엄령을 방불케하는 위기의식을 전파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난 뒤 그룹 출신으로 이뤄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재무전문가들을 선발해 각 계열사로 파견한다. 엄혹한 시기와 맞물려 재정건전성이라는 지상목표를 위해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주어지면서 ‘마피아’로 변모한다.

기술 기업이 과도하게 재무에 치우친 경영을 펼칠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사례로 인텔의 사례가 자주 회자된다. 한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인텔 제국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최고경영자(CEO)의 극단적인 수익 추구, 재무 중심 경영 속에 전설적인 엔지니어들의 줄퇴사와 기술 경쟁력 악화가 이어졌고, 결국 그가 사임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텔은 무너진 기술 리더십 재건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기업이 재무 건전성을 위해 애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재무에만 포커스를 맞춘 경영 방식은 테크 기업이 미래 가치보다는 당장의 숫자 맞추기에 급급하게 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불황 중에도 선제적 투자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할 시기에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황민규 전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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