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된 원전, 사탄이 된 재생에너지 [아침햇발]

이재성 2023. 5. 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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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 ‘에이피알(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성 | 논설위원

대한민국에서 원전은 종교가 되었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이다. 원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니 청정에너지이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영원토록 안전할 거라고 신도들은 믿는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믿음이 부족한 인간에게 신이 내린 계시이며, 후쿠시마 오염수는 마셔도 되는 수준이다. 2031년이면 가득 차기 시작할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은 목사님의 성추행보다도 위험한 금기어다. 탈원전은 천벌 받을 배교 행위다.

‘원전교’ 교인들에게 재생에너지는 적그리스도다. 특히 태양광은 중금속으로 토양을 오염시키고 햇빛을 반사해 눈을 아프게 하며 아름다운 산을 망치는 최악의 이단이다. 재생에너지 찬양은 지옥의 찬송가다. 탈원전이라는 배교 행위와 함께 재생에너지 찬양이라는 지옥의 찬송가를 부른 문재인은 사탄이다.

그런데 이교도의 눈으로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장기적 과제로 탈원전을 ‘선언’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굳이 꼽으라면, 2012년 설계 수명 30년이 다해 가동 중단했으나 박근혜 정부가 재가동했던 월성 1호기를 설계 수명 6년이 지난 시점에서 뒤늦게 폐쇄한 것뿐이다. ‘조기 폐쇄’는 원전교 신자의 방언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막지 못했고,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역시 막지 못했다. 그런데도 원전교 신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비용이 47조원이나 된다며 허수아비를 때린다.

이 신흥종교의 제사장은 <조선일보>다. 윤석열 대통령은 1호 열성 신도이자 제정일치 시대의 집정관이다. “탈원전, 이념적 환경 정책”으로 신성을 모독하는 악의 무리를 향해 복수의 칼을 휘두른다. 0.73%포인트 차이라도 선거에서 이겼으니 공약을 이행하는 것까지 나무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에너지 전환이 지구와 인류의 운명이 걸린 필사의 어젠다가 된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의 행보를 알고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처럼 재생에너지를 악마화하고 원전에 올인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 남은 원전 3기를 지난 4월16일 역사에 묻고, 탈원전 시대에 본격 돌입한 독일은 2035년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아르이(RE)100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기준 전력 생산량의 41%인 재생에너지 비율을 태양광 중심으로 10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피트 포(Fit for) 55’에서 에너지 소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40%까지 확대하기로 했는데, 2년 만인 지난 3월 42.5%로 목표치를 높였다.

유럽이 너무 멀게 느껴지면 가까운 대만은 어떤가. 대만 역시 진보(민진당)와 보수(국민당)가 탈원전과 친원전으로 엇갈리고 있지만, 2016년 민진당 집권 이후 98% 공정률을 보이던 제4원전 공사를 중단하고 탈원전을 선언했다. 국민투표를 거치는 등 거센 논란 끝에, 남아 있는 원전 3기의 수명이 끝나는 2025년 연장 없이 탈원전을 완료하기로 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 우리나라에선 한국 전기차의 보조금 수혜 여부에만 관심이 있지만, 실은 사상 최대의 기후변화 대응 투자 방안을 담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에만 1280억달러(약 170조원)를 투자한다. 원자력에도 투자하지만 재생에너지의 4분의 1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 때 재생에너지에 6조원을 투자했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후진국이다. “우리나라의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비율은 20년째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다. 한화그룹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세계는 이미 태양광 시대’라는 캠페인성 홍보물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후퇴했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문재인 정부 때보다 8.7%포인트 낮춘 21.5%로 내렸다. 윤 대통령의 어법대로라면 태양광 모듈을 생산하는 한화솔루션은 “이념적 환경” 기업인가.

원전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윤석열이라는 비타협적 원리주의자를 집정관으로 둔 것이 국내 교세 확장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의 보편적 흐름을 거스르는 퇴행적 교리가 나라의 경제와 운명을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르이100이라는 혜성이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까이 와 있는데, 시에프(CF·Carbon Free)100이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고 원전교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통성기도 끝에 그들은 넷플릭스 영화처럼 외칠 것이다. “돈 룩 업”(Don’t Look Up).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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