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자’ 시대 저물어간다

성유진 기자 2023. 5. 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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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Biz pick: 거주권 얻기 위한 유럽 투자 곧 막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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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 앞에 EU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로이터 뉴스1

중국 톈진 출신 재력가 샌디 첸은 이달 초 집을 사기 위해 포르투갈 남부 그란돌라 지역을 찾았다. 일정액을 투자하면 거주권을 주는 ‘황금 비자(golden visa)’ 제도가 조만간 없어질 거라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포르투갈 정부는 2012년 도입한 황금 비자 제도가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 3월 폐지 방침을 밝혔다. 블룸버그는 첸의 이야기를 전하며 “유럽 각국이 황금 비자를 재검토하자 이 제도가 사라지기 전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 들어 유럽에선 황금 비자를 없애거나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지난 2월 50만 유로(약 7억원)를 기부하거나 100만유로를 투자하면 거주권을 주는 투자 이민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그리스는 지난 3월 황금 비자를 위한 투자액 기준을 기존 25만 유로에서 50만 유로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스페인도 황금 비자 제도를 폐지하거나 최소 투자액을 두 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부동산 기준 50만 유로가 최소 투자 기준선이다.

유럽에서 황금 비자 제도가 널리 확산된 시기는 2010년대 초반이다. 재정 위기에 시달리던 포르투갈·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 중심으로 앞다퉈 도입했다. 외국 자본을 유치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고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황금 비자를 얻는 이들은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포르투갈 황금 비자는 2012년 제도 도입 이후 1만2000명쯤이 얻었는데, 그중 5000명 이상이 중국 국적자였다. 그리스 황금 비자도 60% 정도가 중국인에게 발급됐다.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를 포함해 세계 110여국이 중국인에게는 단순 방문에도 비자를 요구한다. 이런 ‘국경 허들’을 피하기 위해 부유한 중국인들이 황금 비자를 앞다퉈 얻었다. 솅겐 조약에 가입한 유럽 27국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 비자는 1년에 일주일 정도만 머물러도 유지된다. 일부 국가에선 황금 비자를 받고 5~7년 정도가 지나면 시민권 신청도 가능하다.

황금 비자를 속속 폐지하기로 한 이유는 집값 상승 주범으로 지목돼 여론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15년 이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주택 매매가는 137%, 임대료는 65% 급등했다. 아일랜드 집값도 같은 기간 60% 올랐다. 유럽의 일부 좌파 정치인들은 “외국 자본이 점령한 식민지로 전락했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불안도 커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테러범이 유럽에 머무르며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러시아·벨라루스 국민에게 (황금 비자에 따른) 거주권 발급을 중단하라”고 회원국들에게 권고했다.

불법 자금 세탁에 황금 비자가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도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EU는 거주권을 넘어 시민권까지 주는 ‘황금 여권’ 제도의 경우엔 완전히 폐지할 것을 회원국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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