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한국, 우크라 돕기 위한 포탄 수십만 발 미국에 이송 작업”

손우성 기자 2023. 5. 2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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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방향 전환” 의미 부여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방미 재조명
지난달 12일(현지시간) 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육군 탄약 공장에 보관된 155mm 포탄의 모습. 게티이미지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미국에 포탄 수십만발의 이송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간 우크라이나에 인도적·재정적 지원만 해왔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살상 무기의 ‘우회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국빈 방문에 앞서 미 언론들과 인터뷰하면서 우크라이나에 조건부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WSJ는 이날 “기밀 협정에 따라 한국은 미국으로 포탄을 이전하고, 미국은 이를 차례로 우크라이나로 전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 관리들은 이 조처가 러시아군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계획된 공세를 효과적으로 만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미 백악관과 한국 정부 모두 WSJ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WSJ는 또 “미 국방부는 어떤 방식으로 포탄을 이송 중인지, 이송이 언제 마무리되는지에 대한 언급은 거절했다”면서도 “한국 정부와 포탄 구매를 두고 협의해왔다는 점은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포탄 이전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주저해온 한국 정부의 ‘방향 전환(turnabout)’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윤 대통령의 지난달 미국 방문을 재조명했다.

이 신문은 “한국의 탄약 공급 돌파구는 지난달 윤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에서 한·미 양국이 안보 문제에 대한 공동 선언을 발표한 직후 나온 것으로, 또 다른 유대 강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방미 기간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침략에 맞서야 한다고 말하며 한국 정부가 치명적인(lethal) 지원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지원 여부에 대해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도적·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면서 “추후 전황을 보고 다른 상황을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 실장은 “한·미 간 협의는 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선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직접 지원하거나 폴란드를 통해 우회 지원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WSJ는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가 한·미 간 비밀 무기 합의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할 포탄을 미국에 팔기로 했다고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한국 국방부는 포탄의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라는 조건을 달아 협의 중이라며,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는 방침은 그대로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미 국방부의 기밀문서가 온라인에 대거 유출되면서 지난달 한국산 포탄의 우크라이나 이전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됐다. 미군 주방위군 소속 잭 테세이라 일병이 온라인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유출한 기밀문서에는 한국산 155㎜ 포탄 33만발을 유럽으로 이송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정표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유출된 또 다른 기밀 문건에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등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국가 정책을 위반할 수 없기 때문에 우회 지원 방법을 논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 정보기관이 도청을 통해 얻은 정보인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서 김 전 실장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발표를 앞두고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 시기적으로 ‘국빈 방문’과 ‘포탄 지원’을 맞바꾼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포탄을 폴란드에 판매해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유출된 문건 상당수가 ‘위조’됐다고 주장하면서 문건의 신빙성 자체를 부인해 왔다.

미국은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 200만발 이상을 제공했다. 하지만 재고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한국과 독일, 이스라엘, 쿠웨이트에 있는 미군 포탄 비축분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WSJ는 한국의 포탄 지원으로 미 정부가 ‘논란의 무기’인 집속탄 투입 카드를 아낄 수 있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전했다. WSJ는 “우크라이나는 집속탄을 미 정부에 요구해왔고, 공화당도 이를 승인하라는 압박을 계속 가해왔다”며 “하지만 백악관과 국무부는 집속탄 사용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이유로 저항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은 “집속탄은 정밀 중거리 미사일, 탱크, 병력을 보완해 대반격의 빈틈을 메울 수 있다”며 “하지만 집속탄 지원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155㎜ 포탄이 일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폭탄 하나가 수백개의 ‘새끼 폭탄’을 품고 있는 형태의 집속탄은 국제적 금지 협약까지 체결된 대량 살상 무기로, 인권단체들은 이 폭탄이 민간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 때문에 2010년 전 세계 110개국이 집속탄 사용 금지 협약을 체결했지만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모두 집속탄을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 드론으로 투하할 수 있는 MK-20 집속탄과 포로 발사하는 155㎜ 집속포탄을 지원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해 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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