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자행되는 비윤리적 노동…신간 '더티 워크'

송광호 2023. 5.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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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중서부 지대에 사는 플로르는 생존자였다.

플로르는 사람들이 '더티 워크'라 부르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가 쓴 '더티 워크'(원제: Dirty Work)는 대중에게 외면받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인 이른바 '더티 워크'를 다룬 르포르타주다.

문제는 많은 미국인의 생활 방식이 '더티 워크' 덕택에 유지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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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탐사 전문 기자가 쓴 르포르타주
이미자 캠프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멕시코 중서부 지대에 사는 플로르는 생존자였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돈 벌러 미국으로 갔고, 알코올중독자 할아버지와 매 맞는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가 엄마를 만났지만, 새아빠는 난봉꾼이었다. 밤마다 다가오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기 위해 플로르는 격렬히 저항했다. 더는 참기 어려웠던 그는 친아빠에게 갔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닭고기 정육 공장에 취직했다.

혐오스러운 일을 하면서 그가 버는 돈은 시간당 11~13달러. 영어를 못하는 그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임금이었다. 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는 데다 잔인한 작업공정에 마음은 점점 멍들어갔다. 게다가 손에는 관절염까지 생겼다. 그는 인내심으로 단련된 생존자였지만 정육 공장에서의 일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플로르는 사람들이 '더티 워크'라 부르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마트에 진열된 닭고기 [EPA=연합뉴스]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가 쓴 '더티 워크'(원제: Dirty Work)는 대중에게 외면받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인 이른바 '더티 워크'를 다룬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대규모 정육 공장, 교도소, 드론 전투기지 등에서 근무한 이들을 인터뷰하며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더티 워크'란 필수노동 가운데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을 의미한다. 통상 대부분의 사람이 꺼리는 일이다. 닭고기 정육 공장만 해도 그렇다. 노동자의 80%는 플로르 같은 이주민이거나 유색인종, 저학력 노동자들이다. 외딴곳에 있고, 처우마저 열악한 데다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일반 백인들은 그곳에서 일하려 들지 않는다.

교도소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정신건강 상담사로 일하는 여성 해리엇은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재소자들로부터 폭행당할까 봐 늘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교도관에게 잔혹 행위를 당하는 재소자들의 정신 건강 상태도 염려되기 때문이다. 남편의 실업으로 생계를 책임진 해리엇은 저임금을 받으면서 이 같은 '이중 불안'에 힘겨워한다.

미국 공군의 무장드론 [미국 공군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저자는 이 밖에도 누군가를 저격해야 하는 드론 조종사, 바다 위 시추선 노동자 등 현대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비윤리적이지만 불가결한 필수노동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런 더티 워크에 종사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힘겨운 이들이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티 워크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문제는 많은 미국인의 생활 방식이 '더티 워크' 덕택에 유지된다는 것이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1인당 육류 소비는 100.8㎏으로, 역대 최고치다. 영양학자들이 권고하는 동물 단백질 섭취량의 두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디지털 혁명을 일으킨 각종 무선 디바이스에는 아프리카에서 채굴된 코발트가 들어 있다.

저자는 "제 손으로는 하지 않을 더러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우리는) 또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비판하면서 "이것이 더티 워크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한겨레출판. 오윤성 옮김. 496쪽.

책 표지 이미지 [한겨레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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