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하나님의 공감,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2023. 5.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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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머리가 좋다는 것은 지능지수(IQ)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지능지수는 한없이 높아지고 공감지수는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우는 것은 그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주는 공감인 것이다.

하나님의 공감을 회복한 사람, 타자를 향해 스플랑크니조마이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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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통상 머리가 좋다는 것은 지능지수(IQ)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능지수를 높여 보려고 성장기 아이들에게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DHA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권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능지수와 함께 감성지수(EQ)도 중요하며 감성지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EQ는 정서적인 면의 지능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며 타인에게 공감하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수다.

머리가 좋다는 의미는 그저 지능지수가 높은 것이 아닌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잘 적응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지능지수는 한없이 높아지고 공감지수는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 얼마 전 경기도 용인에서는 바로 옆집에서 50대 장애인이 사망한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공감지수이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은 지 2개월이 지나 심한 악취가 나도 그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 어디에서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또 어디서는 기아와 가난으로 어린아이가 영양실조에 걸려 죽어가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식이다. 그 일은 내 문제가 아니기에 그런 문제에 대해 전혀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픔에 철저하게 공감했다. 하나님의 공감이 잘 표현된 성경 구절이 있다. 바로 누가복음에 있는 과부의 아들의 죽음에 공감했던 예수님의 모습이다. "예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상여가 나오고 있었는데 죽은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고, 그 여자는 과부였다. 그런데 그 동네 많은 사람이 그 여자와 함께 상여를 뒤따르고 있었다. 주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가엾게 여기시며 울지 말라고 하셨다"는 말씀이 있다. 말씀 중에 '가엾게' 라는 말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스플랑크니조마이'라고 한다. 이는 애 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다, 마음속에서 움직이다' 라는 뜻이다.

이렇듯 예수님은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한 과부의 고통에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공감한 것이다.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전부였던 외아들을 잃은 과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과 아픔에 비통하게 울고 있다. 바로 그 때,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저 길을 가시던 예수님은 그 모습을 목격하고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금 울고 있는 한 과부의 슬픔에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은 비통함과 연민으로 공감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울고 있는 과부와 함께 울어 주신 것이다.

공감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아픔에 스플랑크니조마이 할 수 있어야 하겠다.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의 자리에 함께 설 수 있어야 한다. 자크 데리다는 '환대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진정한 환대는 조건을 묻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자의 영토에 유폐돼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우는 것은 그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주는 공감인 것이다. 이렇듯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공감으로 우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길이다. 하나님의 공감을 회복한 사람, 타자를 향해 스플랑크니조마이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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