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향후 5년 내로 세입자 전부 빠져... 인천 ‘역전세 대참사’는 이제부터 시작”

채민석 기자 입력 2023. 5. 25. 06:01 수정 2023. 5. 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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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역전세 최다’ 인천 직접 가보니
‘보증금 미반환 사태’ 전운 고조
입주물량 폭탄에 ‘역전세’ 심화할 듯
6월 입주물량, 전월 대비 3505%↑

지난 24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촌. 인근의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았는데 말 그대로 분위기는 암울했다. 최근 인천 지역 ‘역전세 이슈’에 전세사기 여파까지 겹치면서 전세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말조차도 꺼내기 싫다”며 손사래를 치던 한 공인중개사는 “부동산을 찾아오는 사람은 딱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파산 위기에 처한 집주인 아니면 불안한 세입자”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인천 지역의 빌라는 대부분이 역전세”라며 “향후 5년간은 전세가격이 쭉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촌. /채민석 기자

인천에 ‘역전세 폭탄’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세가 하락으로 전세가율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전세사기 이슈까지 겹친 데다 대규모 물량공급까지 예정돼있어 전세가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이날 만난 집주인 A씨는 지난 2021년 10월쯤 1억7000만원에 신축 빌라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무자본은 아니었고 대출을 받아 구입한 집이었다. 이후 세입자와 2억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는데, 당장 오는 10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전세가가 1억300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도 못하고 있다. 세입자를 구해도 당장 5개월 안에 7000만원을 구해야 하는데 막막하다”며 “매매가도 1억5000만원까지 떨어져, 집을 팔아도 당시의 전세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세입자들의 불안감은 더 크다. 인천 지역의 전세 세입자 대부분은 인근 신축 단지에 입주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잔금을 치르지 못해 입주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오는 2024년 검단지역 신축 아파트에 입주 예정인 김모(38)씨는 “최근 전세사기 이슈로 불안해져 집주인에게 연락해보니 ‘지금은 어렵지만, 계약 만료까지는 돈을 마련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1년 내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여 불안하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인근 빌라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채민석 기자

인천 ‘역전세 잔혹사’의 발단은 2년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 2021년 하반기부터 전세값이 폭등하기 시작해 이를 노린 무자본·마이너스 갭투자가 성행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주택자금조달계획서를 기준으로 자기자본을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빌라 거래는 지난 2020년 674건에서 2021년 4355건으로 폭등했다. 특히 미추홀구는 125건에서 1057건으로 9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깡통전세’ 위험성을 알려주는 전세가율(주택매매가격에 대비한 전세가격의 비율)도 덩달아 높아졌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인천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74.9%였다. 연립·다세대의 전세가율은 무려 87.8%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깡통전세’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준은 80% 수준이다.

그러다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전세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인천의 전세가격은 2년 전인 2021년 4월 대비 17.1% 하락했다. 이는 전국 평균(-11.8%)보다 높은 하락률이다. 전세가 폭락은 아파트도 피해가지 못했다. 일례로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연수시영1차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11월 1억3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지만, 지난 3월에는 7300만원까지 떨어졌다. 2년도 안돼 43.8% 하락한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문제는 2021년 전세가가 정점을 찍었을 당시 계약을 체결한 세입자의 계약 만기가 올해 도래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들은 오히려 돈을 보태야 하는 상황이다.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갭투자 붐’이 2년 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면서 ‘역전세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는 양상이다. 전세가가 떨어져 집주인들이 전세 만기가 도래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들어지면서 너도나도 ‘전세가 낮추기 경쟁’을 하다 보니 전세가는 더욱 떨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 입주 물량까지 대거 공급될 예정이라 전세가는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23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오는 6월 인천 아파트 입주물량은 1만2330가구다. 이는 전월(342가구) 대비 무려 3505%가량 증가한 수치다. 대표적인 단지는 인천 미추홀구 힐스테이트푸르지오주안으로, 2958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게다가 오는 2027년까지 인천 지역에 신규 물량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미추홀구 전세 세입자의 90%는 5년 내로 인근 신축단지에 입주할 예비 입주민이라고 보면 된다”며 “5년 안에 모든 전세 세입자가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천의 역전세 대참사는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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