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 개혁하지 않으면 붕괴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의사 부족’
환자 수요에 맞게 의사 배출 늘려야
허술한 의료법,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
의대 정원, 사회적 합의 제도화해야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할 조짐이다. 대학병원이 소아 입원환자 진료를 축소하는가 하면, 대낮 대도시에서 응급환자가 받아주는 곳이 없어 사망하는 등 필수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격차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지만 정부는 대책이 없다. 게다가 2026년부터 서울대병원 등이 수도권에 10개 분원 6000병상을 세우면 지방 의료는 붕괴될 것이다. 이 모든 문제가 의사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무기로 한 의사들의 반대로 20년 넘게 의대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간호법 갈등으로 의료계가 두 쪽이 났는데도 정부는 간호법만 비판하는 유체이탈화법을 계속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 의료정책으로는 더 이상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지속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이유는 정부가 무질서한 의료 시장을 오랫동안 방치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정부는 건강보험에만 치중했고 의료 시장이 질서 있게 작동하는데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거의 관심이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인 간 갈등이다. 1962년 제정된 의료법은 의사, 한의사 등 각 직종의 업무를 단 한 줄로 허술하게 규정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의료 직종들이 업무 영역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업무 영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거나 의료인의 업무 범위를 정하는 법적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자기 업무 영역을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니 여러 직종들 간에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간호법 갈등의 주범은 의료인들의 직종 이기주의가 아니라 허술한 의료법을 60년 넘게 방치한 나태한 정부인 셈이다.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외국에 비해 더 많은 외과, 흉부외과 전문의가 배출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병원이 환자 수에 비례해서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 그 결과 외과, 흉부외과 전문의의 30~40%는 개원해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보고 있고, 정작 큰 병원에는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역설적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 병원이나 심장병, 뇌졸중과 같은 중증환자를 자유롭게 진료하는 것도 문제이다. 환자 수요에 비해 심장병, 뇌졸중 환자를 보는 병원이 너무 많으니, 의사 인력이 분산되어 24시간 365일 당직을 설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낮에는 병원이 넘쳐나는데 정작 밤에는 당직 의사가 없다고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정부가 질서 있는 의료 시장을 만들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정부가 의사협회 같은 힘 센 이익단체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병상은 의사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해주면서 환자를 진료할 의사는 늘리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결과 지난 20년 간 병상 수는 2.4배 늘었고 의사 1명이 진료하는 입원환자 수도 1.8배 늘었다. 그 결과 환자는 입원해도 의사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고, 불필요한 입원으로 매년 10조원 넘는 의료비가 낭비되는데도 정부는 무정부적인 병상 공급을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병원이 단순한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보고, 동네 병의원이 심장병, 뇌졸중, 암 환자를 보는데도 수십 년째 의료전달체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대학병원에 진료 받는 경증환자는 쓸데없이 진료비가 비싸지고,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 받는 중증환자는 사망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정부는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개원의 사이에서 수십 년째 눈치만 보고 있다.
응급센터들이 관행적으로 진료를 거부해 이른바 ‘응급환자 뺑뺑이’로 사망하는 사건이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은 없이 병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만 되풀이하고 있다. 외국처럼 병원이 응급환자를 볼 수 없는 상황이면 미리 ‘응급환자 수용불가’를 미리 선언하고 아니면 무조건 응급환자를 받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병원 눈치를 보느라 응급환자보다 비응급환자 진료를 우선하는 나쁜 진료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의료체계가 붕괴하지 않도록 의료 시장에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환자 수요에 맞게 의사의 배출은 늘리고, 병상은 더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 수가 인상은 필요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심장병, 뇌졸중 환자를 보는 병원을 지역별 환자 수요에 맞춰 지정하고, 지정된 병원에 대해서만 충분한 의료인력을 고용하는 것을 전제로 수가를 올려줘야 한다. 허술한 의료법을 포함한 여러 법령을 선진국 수준으로 정교하게 만들고 정책 결정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의대 정원처럼 정부 힘만으로 갈등을 조정하기 어려운 영역은 사회적 합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권한을 붙들고 있지 말고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김성곤 (skz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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