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도 억울한데 ‘혈세 도둑’ 취급…두 번 우는 피해자들
‘특별법’ 제정돼도 달라질 것은 없어…거주 주택 경매 낙찰이 최선
결국 피해자들에게 더 큰 빚 내라는 것…가담자 처벌은 미적 ‘분통’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24일, A씨는 기자와 통화하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동안 A씨는 전세보증금이 3억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저리대출을 비롯한 정부의 각종 피해지원을 받지 못했다.
국회 문턱을 넘은 특별법에서는 보증금 지원 요건이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됐다. 그러나 A씨는 “보증금 요건은 상향됐지만 아직도 남은 요건이 있어 피해자로 인정받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전세사기를 ‘사인 간 계약’ 문제로 보는 정부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얘기다.
지난 22일 여야가 합의한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은 최초 정부안보다 지원 요건이 상당 부분 완화됐다. ‘보증금 상당액 손실’ 항목은 삭제됐고, 신탁사기 피해자도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특별법을 보는 피해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피해자 B씨는 임차권 등기까지 설정했으나, 현재 피해 주택에서 전출했다는 이유로 정부 피해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별법에도 전출과 관련한 명시적인 언급은 없다. B씨는 “여야가 합의했다는 기사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행에 대환대출 가능 여부를 문의해봤으나 역시나 ‘규정이 없어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특별법이 통과된다 해도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거주 주택을 낙찰받는 것이 유일하다. 경매 낙찰대금이나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돈은 장기간 저금리로 대출해주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기조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미 빚더미에 앉은 피해자에게 더 큰 빚을 지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 주택은 이미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는 ‘깡통주택’인데, 이를 낙찰받으려면 임대인 체납 세금까지 피해자가 대신 갚아야 한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전세사기는 사인 간 계약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기 가담자 처벌엔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상당수 신축빌라 전세사기는 건축주가 임차인(세입자)과 전세계약을 맺은 뒤 미리 섭외해둔 바지 임대인(집주인)에게 명의를 이전해버리는 ‘동시진행’ 방식으로 이뤄진다.
건축주나 공인중개사는 바지 임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바지 임대인들이 은닉재산을 현금화해버리면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피해자들이 ‘선 보상 후 회수’를 정부에 요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우선 피해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지급해주고, 전세사기꾼들에게 이를 회수하면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 C씨는 “피해자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세금으로 보증금을 물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반적이지 않은 주택을 소개한 중개인은 자격 박탈 후 거액의 벌금을 물리고, 임대인과 임대인 가족의 재산을 강제력을 행사해 몰수한 뒤 임차인들에게 돌려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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