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정의'가 필요해" 불안한 주택시장에 던지는 '화두'
[아이뉴스24 안다솜 기자] "가격 변동에서 자유로울 정책은 없지만 가격 사이클의 움직임에만 경도된 정책은 사람 중심 정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기존 법과 제도 체계 안에서 현재 발생하는 부당한 주거 상황과 다양한 불안들이 완화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최근 전세사기, 깡통전세 등 주거 불안 요인이 사회 내에 커지고 있는 가운데 '주거 정의적 관점'으로 주택정책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4일 LH경기남부지역본부에서 '주거복지의 3대 실현 과제(안정·안전·안심)와 사회 인프라 연계·발전 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다. 이 자리에선 최근 임차인의 최대 주거불안 요인인 전세 문제를 비롯해 청년 주거 확대, 노인세대의 에너지 빈곤, 공공주택 복합화 방안 등이 폭넓게 다뤄졌다.
특히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정책지원단장은 '주거복지를 넘어 집에 대한 정의로움을 정책하기'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주거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법·제도를 개선하는 사고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며 "불안, 불평등, 불신, 불공정한 관행에서 초래된 문제점을 규명하고 구조적인 장애 요인을 찾아 정부와 시민이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단장은 이날 발표에서 주거 정의적 관점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주거 정의'는 모든 사람이 천부인권이자 기본적 인권으로 주거권을 가졌다는 사상 아래 무주택 서민의 주거권을 보호함으로써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사이에 실현하는 정의로 단순한 주거복지 추구보다 더 주거에 대한 기본권을 강조한다.
주거복지와 주거 정의 실현의 저해 요인으로는 집값 변동성, 전세의 금융화, 비공식 임대부문의 빈곤 비즈니스화 등이 꼽혔다.
특히 매매가보다 변동성이 큰 전세값의 경우 임차인의 최대 주거 불안 요소로 지적됐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올해 4월말 기준 전국적으로 고점 대비 주택 매매가는 6.6%, 전세가는 8.5% 하락했다. 진 단장은 "고점 대비 전세가 낙폭이 큰 지역 중심으로 전세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심화됐다"며 "집값 상승기엔 전세대란 문제가 발생하고 하락기엔 역전세와 깡통전세, 전세사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 단장은 전세의 금융화 문제도 언급했다. 전세로 사는 가구는 점점 감소하는데 강한 전세수요로 전세대출을 받은 가구 비중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가구 중 전세가구는 1995년 29.7%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감소해왔다. 전체가구 중 전세가구 비중은 2020년 15.5%로 조사됐다. 반면 전세가구 중 전세대출 가구 비중은 2012년 24.5% 수준에서 2022년 40.4%까지 늘었다.
2022년 기준 전세보증금 630조원의 38%는 전세대출이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 단장은 "전세 지원을 위한 대출 확대가 전세가격 안정화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전세제도의 문제는 계속 지적돼 왔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2018년에 한국에 방문한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유엔특보)이 우리나라 (주택) 상황을 보고 집을 소유하지 않고는 주거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며 "전세(제도) 규제가 필요하고 세입자 보호 대책을 만들라는 요구가 있었다. 집을 소유하든 아니든 간에 주거권 보장을 위해 규제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유엔특보는 주거빈곤층의 주거권 확보를 위해 주거 급여 보장 수준을 확대하고, 취약계층 주거 공급이 지나치게 낮은 것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밖에도 이날 세미나에선 가려진 주거취약지대 증가와 비공식 임대부문의 빈곤 비즈니스화 문제도 언급됐다. 쪽방, 판잣촌, 비닐하우스 등 역사적 주거빈곤처는 감소하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 주거취약지대는 증가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분석한 결과, 판잣집과 비닐하우스 가구는 2000년 약 3만가구에서 2021년 7천541가구로 줄었는데 호텔, 여관 등 숙박업소의 객실가구와 고시원 등 모호한 기타 거처 가구는 2021년 기준 각각 4만5천283가구, 39만가구로 집계됐다.
주택임대 목적이지만 고시원업, 숙박업으로 둔갑한 비공식 임대부문의 확대도 주거 정의 실현을 방해한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해당 거처들의 전용면적은 평균 15㎡ 수준이며 취사와 화장실 등 시설을 공유하지만 3.3㎡당 임대료는 12만3천원으로 일반 주택(5만3천원)의 2배를 웃도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진 단장은 "주거 불안의 양태들이 더 다양해지고 복합화되고 있다"며 "적정 주거 기회를 늘리고 희망을 갖도록 정책 의지와 역량(자원, 제도 인프라)을 강화하고 집행력을 높여 주거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복지 실현을 위한 주거복지 인프라 확대를 위해 '공공임대주택'의 활성화를 제시했다. 공공임대주택이 이사, 임대료 인상, 강제 퇴거 우려가 없다는 측면에서 무풍지대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은영 소장은 "공공임대주택도 필요하지만 단기간에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런 와중에 정부가 (임대주택 공급을) 줄였다. 전 정부에서 연간 13~14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현 정부는 10만호 수준으로 늘려도 모자란 상황인데 줄이기로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거 정의 실현을 위해선 월세 가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주거 급여가 있긴 하지만 거의 근로 능력이 없어야 적용 대상이 돼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며 "빌라왕, 건축왕 등이 나오지 못하게 민간임대 주택시장 공급을 규제하는 등 세입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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