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현장] 해낼 뻔 했던 울산 침몰… 하얗게 불태운 전남, 그들은 챔피언을 이길 수 있었다
(베스트 일레븐=광양)
아시아 최강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울산 현대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승부하겠다는 이장관 전남 드래곤즈 감독의 출사표는 솔직히 '공수표'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K리그1 팀들도 어지간해서는 울산과 정면 대결을 벌이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말 전남은 울산과 대단한 승부를 펼쳐 보였다. 울산의 넉넉한 승리를 생각했을 팬들은 꽤나 손에 땀을 쥐게 되는 치열한 대결을 보게 됐다. 이 감독이 이끄는 전남은 24일 저녁 7시 광양 축구전용구장에서 벌어진 2023 하나원큐 FA컵 16강 울산전에서 1-2로 아쉽게 역전패를 당했다. 전남은 후반 17분 하남의 선제골을 앞세워 한때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으나, 후반 종료 직전 임종은의 한 골, 연장 전반 1분 마틴 아담의 연속골을 앞세운 울산에 분패했다.
경기 전 객관적 전력상 울산이 두세 수 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직접 울산과 대결해야 하는 이 감독의 생각이기도 했다. 전략적 승부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 감독은 "물러서든, 앞에서 맞불을 놓든 쉽지 않은 숭부"라고 했다. 워낙 체급차가 큰 팀이라 어떤 자세를 취해도 고전이 불가피하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어차피 힘든 승부라면 맞불이라는 게 이 감독의 선택이었다.
문제는 이 감독의 이 선택을 선수들이 피치에서 구현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아무리 전략·전술적 준비가 큰 영향을 미치는 팀 스포츠 축구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개개인 역량에 경기력과 결과가 수렴하는 법이다. 이름값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전남 선수들은 정말 저돌적이었다.
전반전에 벌인 정면 승부로 울산과 시소 게임을 벌인 게 선수들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준 듯했다. 아스나위·박성결 등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은 체격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저돌적으로 울산 선수들과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수없이 많이 공격권을 따내면서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공격을 시도했다.
전반전만 놓고 보면 한 수 아래라는 전남이 더 많은 공격 찬스를 잡았다. 전반 13분 플라나의 왼발 감아차기 중거리슛, 전반 21분 하남의 오른발 땅볼 강슛, 전반 29분 박성결의 크로스에 이은 하남의 헤더슛 등 계속해서 유효슛이 나왔다. 반면 울산은 전반 27분 코너킥 상황에서 정승현이 헤더로 한 차례 골문을 겨냥한 게 전부였다. 전남이 중원 싸움에서 울산에 밀리지 않았기 떄문이다.
이 흐름이 후반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 감독은 후반 4분 박성결을 빼고 에이스인 발디비아를 투입하며 승부를 걸었다. 팀에서 가장 정교한 킥과 훌륭한 패스 센스를 가지고 있는 발디비아의 창의성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노림수였는데, 이게 적중했다. 후반 17분 발디비아는 우측면 높은 위치에서 얼리 크로스를 날려 박스 안에 있던 하남의 헤더골을 유도했다.
이전까지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전남은 하남의 이 골 이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전남 선수들은 울산의 공격 전개 과정에서 실로 몸을 날리는 육탄 방어까지 마다하지 않고 상대를 괴롭게 했다. 울산의 총 공세가 심화됐던 후반 막판에는 몇몇 선수들이 근육 경련까지 호소하는 극한에 내몰렸으나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다.
안타까운 건 막판 고비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승리가 목전에 왔던 후반 추가 시간에 마틴 아담의 헤더 패스를 받은 울산 수비수 임종은에게 실점한 것은 너무도 뼈아팠다. 선수들이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으며, 임종은에게 실점했을 당시 교체로 필드를 밟았던 골키퍼 최봉진마저도 큰 타격을 받는 등 선수들의 고통이 꽤 컸다.
후반 종료 직전 울산에 주어진 프리킥 상황에서는 주장 이후권마저도 부상으로 아웃됐으며, 아스나위는 연장전까지 세 번이나 근육 경련으로 자리에 쓰러진 끝에 피치를 떠났다. 더 뛰고 싶어도 이미 한계까지 뛴 선수들이었다. 교체 카드도 없어 연장 후반에는 열 명으로 울산을 상대해야 했으며, 경기 막판에는 아홉 명으로 버텨야 했다.
결국 전남은 연장 전반 1분 바코의 도움을 받은 울산 스트라이커 마틴 아담에 추가 실점한 것을 만회하지 못하고 패했다. 전남 처지에서는 다 잡은 승리가 신기루처럼 날아가고 말았지만, 현장에서 지켜 본 팬들은 전남의 투혼에 박수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전남의 경기 자세는 대단했다. 그들은 정말 챔피언을 이길 수 있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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