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첨단산업 육성엔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반도체기업 클러스터화 되면
장비업체·전문인력 몰려들고
'지식전이' 효과도 있기 때문
지난 3월 15일 정부는 전국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지정하고, 2026년까지 550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 유치 정책을 발표했다. 이 중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발표가 눈길을 끌었는데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기술강국 간의 주도권 경쟁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정책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이 없다면, 민간 투자만으로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첨단 산업에는 소위 '긍정적인 외부성'이 존재한다. 첨단 기업들이 클러스터화될 경우 여러 이점이 존재한다. 우선, 생산에 필요한 특수 장비와 중간재 생산 기업들을 동시에 끌어들일 수 있고, 이들 간의 경쟁을 통해 장비와 중간재 가격이 하락하거나 그 사용이 편리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스템 반도체 생산 기업들이 클러스터화될 경우 주요 장비인 급속열처리장비 생산 기업들이 함께 모여들 수 있다.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관련 정보를 빠르게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 생산 시 비용 절감의 혜택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다음으로는, 첨단 제조 기업들이 클러스터화되면 고급 전문 인력에 대한 일자리가 열리기 때문에 인재들이 이 지역으로 몰릴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첨단 공학 분야의 대학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으로 첨단 제조 기업들이 클러스터화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용인이 시스템 반도체 국가산단으로 지정된 것과 수도권 지역에 우수한 대학이 몰려 있다는 점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점으로 기업 간 기술 경쟁을 통한 소위 '지식전이' 효과를 들 수 있다. 특정 지역에 첨단 기업들이 몰려 있는 경우 기업들 간의 기술 관련 정보가 자연스럽고 빠르게 공유되기도 하고, 전문 인력의 이동으로 인한 기술 전파와 기술 경쟁이 유도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외부성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정부의 보조금이 없다면 기업들의 생산 계획과 새로운 기술 목표 수준이 예상보다 낮게 결정될 수 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필수적이며, 산업의 성장과 기술 효율성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 이는 마치 교육, 보건, 의료 등에 정부 재정 지원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
둘째, 글로벌 첨단 산업에서 '보조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 산업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자국 내 투자 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도 반도체와 2차전지 분야에서 한국과 대만 등에 밀린 것을 만회하고자 외국인 투자에 대한 대대적인 세제 혜택 정책을 취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불안으로 인해 자국 기업들의 미국과 일본으로의 해외 투자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영국, 독일 등 유럽은 환경, 에너지 그리고 첨단 디지털 산업 전환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경제학에서 '보조금 전쟁' 이론으로 묘사될 수 있다. 이 이론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개의 기업이 있을 때, 한 국가가 보조금을 지원할 경우 자국 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시장점유율과 이윤이 높아진다. 이를 방어하기 위한 경쟁 국가 정부의 최적 전략 역시, 보조금 정책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시장점유율과 이윤 감소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현재 이러한 글로벌 보조금 전쟁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반도체, 2차전지, 그리고 전기차 분야와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고려해야 할 시기이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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