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경제팀 이제부터가 실력이다
보수 부끄럽게 한 노무현처럼
총선용 임시방편 정책보다는
표떨어질 각오를 정책 1순위로
2016년 미국 대선은 경제학의 좋은 연구 대상이 됐다. 여론조사와 워낙 결과가 달라 유권자들 실제 표심을 추정하는 다양한 기법이 논의됐고,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고 봐도 될 정도로 갈라선 대선 이후 경제지표에 대한 연구도 활발했다. 그 결과물이 하나둘씩 경제학 저널에 실리고 있다.
이달 초에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발표한 '당파적 편향, 경제적 기대, 그리고 가계 지출'이라는 논문도 그중 하나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유권자들 정치적 양극화가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설문에 기반한 경제적 기대치에도 당파적 편향성이 커졌다. 지지 정당이 집권한 유권자들은 향후 경제를 보다 낙관적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컸고,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민주당보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2배가량 강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미국인들이 왜 이리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는지를 설명하면서 이 논문을 인용했다. 본인의 경제적 상황은 좋지만,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집권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기대치를 드러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팬덤경제는 냉정해야 할 경제지표를 흔들어 신뢰를 떨어뜨린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켐프 시카고대 교수 등이 3년 전 발표 논문을 보면 신용평가 애널리스트들이 등급 조정 때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온 애널리스트들은 그렇지 않은 애널리스트보다 기업 신용등급을 더 자주 낮췄다.
한국은 당파적 편향성이 더욱 심하다. 소득주도성장처럼 정체불명의 경제이론이 당파적 편향을 덧입어 정부 경제정책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쏟아진다. 여의도로 넘어간 경제정책들은 오기가 묻어나면서 선동으로 뒤바뀐다. 제대로 된 경제효과 분석엔 관심 없고,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구호만 가득하다. 구호로 경제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야당 경제정책이야 원래 그랬다고 치더라도, 정부·여당 정책도 다소 실망스럽다. 포퓰리즘을 비난하면서 대한노인회 회장단 경비를 지원하는 법안에 여당 의원들이 대거 동참했다.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예산 낭비라고 사실상 판가름이 난 지방공항 건설을 정부가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다. 총선을 앞둔 나라 곳간을 지키는 이가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집권당의 경제철학이 뭐냐고 물었을 때 곧바로 답변을 내놓는 관료를 보질 못했다. 원전 재가동이나 규제 완화를 경제철학이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전 정부의 기이한 정책 후유증을 뒷수습할 게 많겠지만, 윤 정부는 이제라도 제대로 된 경제정책 기조부터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일선에서 혼선이 덜하다. 지금은 정부가 긴축정책을 쓰고 있는지, 확장정책으로 돌아선 건지도 헷갈린다. 정책 1순위가 뭔지 알 수 없다. 윤 정부 경제팀은 지난가을 과감한 관치 개입으로 금융위기를 잘 넘겼는데, 진짜 실력은 이제부터다.
정치의 계절로 다가갈수록 관치 유혹이 커지겠지만 이제 슬슬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 총선용으로 부동산 경기 진작에 나섰다가 집값 거품을 초래했던 박근혜 정부 때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표 떨어질까봐 금리 인상과 가계부채 관리를 방관했던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노무현의 유산을 자꾸 거론하는 것은 경제정책만큼은 당파성에 기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미 FTA로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인 점은 두고두고 평가받는다. 보수를 부끄럽게 했던 진보의 경제정책이었다. 윤 정부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 경제정책은 인기 떨어질 각오를 1순위로 내세워야 한다.
[송성훈 금융부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수학여행 학생 짐가방서 발견된 ‘이것’ 때문에...김포공항 발칵 - 매일경제
- “푸틴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러시아 본토 공격한 이녀석들의 정체 - 매일경제
- 단숨에 ‘12만 유튜버’ 된 조민…“데드리프트 90㎏ 친다” - 매일경제
- 콧대높았던 이 술, 어쩌다 ‘줄도산’ 공포로 벌벌 떠나 - 매일경제
- G80에 좀 더 보태 수입차를?…동급차종 5개 유지비까지 비교해보니 - 매일경제
- 강남 부자들이 줄섰다는데…年19% 배당에 차익 노리는 이 상품은 - 매일경제
- “부르는 게 가격인 제품 2000병 풀린다”…위스키 오픈런 벌어지나 - 매일경제
- 엔비디아 어떤 실적 냈길래…시간 외 거래 20% 폭등 - 매일경제
- “청첩장이 반가울수가”...부쩍 늘어난 결혼, 추락한 출산율에 단비? - 매일경제
- ‘1년 자격 정지 징계’ 끝난 정지석, 男 대표팀 합류…AVC챌린저컵·항저우 AG 간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