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포퓰리즘 판별하는 능력 길러줘"
9살때 호주 이민 말없던 소년
토론반 들어가 자신감 얻어
하버드 조기진학·최우등 졸업
호주 신문에서 기자로도 일해
내성적이던 한국 소년은 아홉 살 때 호주로 이민한 뒤 '반대하는 능력'을 잃었다. 처음에는 언어 장벽이, 이후에는 인종적·문화적 소수성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소년이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은 건 교사의 권유로 토론반에 들어가면서였다. 토론에서는 발언 전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보장됐다. 고등학생이 된 소년은 2013년 세계학생토론대회(WSDC) 우승과 베스트 스피커 호명을 거머쥐었다. 하버드대에 진학한 뒤에는 2016년 세계대학생토론대회(WUDC)에서 우승하고 호주 국가대표 토론팀 및 미국 하버드대 토론팀 코치로 활동했다. '좋은 반대하기'를 위한 토론 안내서 '디베이터'를 최근 발간한 서보현 작가(29·사진)의 이야기다.
서 작가는 토론을 가치 있는 반대에 집중하기 위해 나쁜 논쟁들을 배제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의견을 주고받으며 그동안 조명되지 않던 부분에 주목할 수 있고, 상대 주장에 대한 반박을 넘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서 작가는 "토론 참여자들은 수준 높은 반대를 통해 서로에게 배우고 최선의 답을 찾아갈 수 있다"며 "제대로 된 토론을 위해서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예의와 함께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반박당할 용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 작가는 민주주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중이 정치인의 토론을 평가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정책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역설하는지, 말장난과 포퓰리즘으로 선동하는지 판별해야 유권자로서 합리적 지지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 작가는 "중상모략으로 점철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미국 대선 토론을 보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낀 적 있다"며 "대중이 토론 능력을 갖춰야 정치인의 주장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고 기회주의자들의 조작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 작가는 토론이 참여자의 지적 능력도 증진시킨다고 밝혔다. 논리를 마련하고 상대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논박하며 논리적 사고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토론이 '존재의 이유'였을 만큼 토론 활동에 집중한 서 작가는 하버드대에 조기 입학해 교내 상위 1% 학생이 드는 '주니어 24'에 선정됐고 미국 최고 권위의 우등생 클럽 '파이 베타 카파' 회원이 됐다. 하버드대 학부를 최우등 졸업한 뒤에는 슈워츠먼 장학금을 받아 중국 칭화대에서 공공정책 석사과정을 마쳤고 현재 하버드대 로스쿨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서 작가는 "하버드는 1806년 설득하는 말하기(수사학)를 가르치는 보일스턴 명예교수직이 생긴 뒤부터 수사학이 교과과정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며 "산업혁명 이후 글쓰기가 강조되면서 수사학의 지위가 떨어지긴 했지만 생각을 상호·즉흥적으로 주고받는 토론은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석사과정 후 호주 언론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에서 2년간 기자로 일한 서 작가는 박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변호사로 일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호주 정치계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서 작가는 "기자 일을 하면서 대중의 목소리를 조명하려 했지만 언론의 여론 형성 기능에 한계를 느낄 때가 있었다"며 "법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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