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방문객 '뻥튀기' 경쟁 … 결국 공멸의 지름길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3. 5. 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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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집계한 축제 방문객 수
관광공사 데이터랩과 큰 차이
450만명 몰렸다는 진해 군항제
빅데이터 분석으로는 163만명
지역축제 지자체장 '치적'전락
국고 지원과 연결돼 숫자 집착
경제 효과 부풀리기로 이어져
일부 지자체는 알바가 카운팅
통신 기지국·신용카드 매출 등
빅데이터 결합 집계방식 필요

◆ 매경 포커스 ◆

'450만명 vs 163만명.'

무려 287만명. 지난 4월 진해 벚꽃축제(군항제) 기간 창원시가 발표한 방문객 숫자(450만명)와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데이터랩이 분석한 결과(163만명) 간 미스터리한 격차다. 어떤 숫자를 믿어야 할까. 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 외국인 방문객 숫자다. 창원시 발표에 따르면 이 기간 축제를 찾은 대만 관광객은 20만명 수준이다.

그런데 이 숫자 역시 '뻥튀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진해를 방문하는 대만 관광객은 대부분 부산을 찍고 온다. 대한항공, 타이거에어, 중화항공에다 제주항공, 에어부산까지 축제가 열렸던 3월 하순 대만 출발 항공 노선을 다 긁어봐도 공급 좌석은 6870석에 그친다. 서울과 대구 공항을 경유하는 여행족을 포함해도 20만명은 어림도 없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다. 창원시는 창원시 나름의 집계 방식이 있다고 항변한다. KT와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데이터를 수집·산출한 데이터랩 빅데이터 역시 100%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개별 휴대폰이 없는 어린이나 노인층은 집계에서 빠진다. 그래도 '2.7배 뻥튀기'는 해도 너무하다고 여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꼬집는다.

전국 지역축제가 정상 궤도에 오른 가운데 한동안 사라졌던 '축제 방문객 숫자 뻥튀기 경쟁'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역축제를 전담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비 지원이나, 시도 지원을 위해 방문객을 부풀려 발표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어진 축제 공화국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여전히 뻥튀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보기술(IT) 강국 위상에 걸맞은 선진 시스템 기반의 데이터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령 머드축제 외국인 숫자 79배 차이

뻥튀기 심각성은 한국관광공사 관광 데이터랩 분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한민국 전국 축제 개수는 구 단위 소규모까지 포함하면 10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문체부가 국비를 지원하는 축제는 86곳이다.

한국관광공사 지역관광콘텐츠팀이 정부 지원 축제 86곳 중 1차적으로 19곳의 방문객 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방문객 부풀리기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해 벚꽃축제뿐만이 아니다. 미국 CNN이 전 세계 겨울 대표 축제로 꼽은 화천 산천어축제의 군 발표 공식 방문객 숫자는 130만명 선이다. 반면 휴대폰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랩 분석 결과는 79만6829명에 그친다. 심지어 현지인을 제외한 순수 외지인 방문객은 42만5000명대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 직전 데이터는 부풀리기가 더 심각하다. 180만명 방문으로 기록된 2019년 산천어축제는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에는 75만3000명대(순수 외지인 49만9000대)로 집계됐다. 2배 이상 부풀린 셈이다.

5월 초 막을 내린 전남 담양 대나무축제 역시 마찬가지다. 군에서는 63만명이 방문했다고 발표한 반면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이 집계한 숫자는 42만명(순수 외지인 28만명) 선이다.

특히 부풀리기 꼼수가 집중되는 곳은 외국인 방문자 수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다는 충남 보령 머드축제가 대표적이다. 보령 머드축제가 마지막으로 열린 건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여름(7월 21일~8월 6일) 시즌이다. 당시 보령군이 내놓은 총방문객 수는 181만1000명 선. 이 중 외국인은 38만8000명이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 숫자는 확연히 다르다. 해당 기간 보령을 찾은 방문객은 106만2000명으로, 가까스로 100만명을 찍었다. 특히 휴대폰 빅데이터를 통한 외국인 방문객은 불과 4907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숫자 집계에서만 무려 79배의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통계 오류,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자체들은 집계 방법이 달라서라고 항변한다. 규모가 작은 구 단위 축제일 경우 지금도 아르바이트생 2~3명을 고용해 클리커를 통한 수기로 방문객 수를 카운트하는, 구닥다리 방식을 쓰는 곳도 있다. 그나마 현대적인 집계 툴이, 서울 용산 이태원 참사 때 쓰인 폐쇄회로(CC)TV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축제 현장에 설치한 CCTV를 통해 인원수를 집계한 뒤 축제 전체 시간에 곱해 산정하는 곳, 그리고 단위 면적당(가로 30m×세로 20m) 인원을 계산한 뒤, 장소의 넓이와 소요 시간을 곱해 계산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국관광공사 방식은 철저히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조사 지역 내 특정 지점(특정 기지국 반경 내)에 30분 이상 체류한 내국인 방문자 수(해당 지역 거주자, 통근자, 단순 통과자 등은 제외)가 근거 데이터로 활용된다. 외국인 방문자 수 산정에는 한국 통신사(본국에서 구매한 유심을 제거하지 않은 외국인 여행객이 국내 통신사와 신호를 주고받은 데이터)의 시그널 데이터로, 방문 국가를 추정(과거 60일 기준, 15일 이하 체류자)한다. 목적이 축제 방문이 아닐 수는 있지만, 정량적 측면에서는 정교한 추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조윤미 한국관광공사 관광빅데이터전략팀장은 "올해 말까지 국고 지원 86개 지역 축제에 대한 빅데이터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지자체들도 관광 데이터랩의 빅데이터에 입장권 판매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활용한다면 보다 정확한 통계치를 가지고 발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악순환…빅데이터 적극 활용해야

지역 축제 방문객 수 산정은 사실 복마전이다. 부풀리기 자체가 업계의 오랜 관행이면서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역 축제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방문객 숫자가 차기 연도 축제의 지원금 산정에 근거 자료가 된다"며 "당해 연도에 지원을 받다 지원이 끊기면 바로 징계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 공무원들도 어쩔 수 없이 (부풀리기) 관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귀띔한다.

지자체 입장에선 성과 위주로 축제 보고서를 쓸 수밖에 없고, 일단 부풀려진 숫자는 차기 연도 국고 지원과 직결되는 만큼 또 부풀려지는 '폭탄 돌리기'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지역 축제가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용 행사로 전락한 것도 방문객 뻥튀기에 한몫하고 있다. 순수한 축제 목적의 이벤트가 아니라, 선거가 있는 연도에 우후죽순 늘었다가 사라지는 일회성 축제도 줄줄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한 대학의 관광학과 교수는 "숫자로 보여주는 자랑용 축제가 아니라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소멸지수를 해소하는 보다 거시적인 축제들이 생겨나야 한다"며 "그 시작점이 방문객 수의 정확한 측정과 공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무관심도 문제다. 지역 축제를 진두지휘하며 국고를 지원하는 문체부는 의심 없이 지자체가 제출하는 방문객 수 자료만 참고하고 있다.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 자료는 축제 지원금 산정 근거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도나 시 역시 마찬가지다. 매년 20억~30억원의 도비 보조금을 도내 우수 축제에 지원하면서도, 객관적인 방문객 데이터 대신 개별 시·군·구에서 수기로 측정한 방문객 수만 활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축제 국고 지원금이나 외부 공모 지원금은 눈먼 돈으로 불린다.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은 아예 지방 전문 여행사들과 결탁해 서류를 꾸미고 돈만 챙기는 경우까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여행사들은 지원금 공모 서류, PT 제작 대행까지 도맡는 황당한 사례도 있다. 지원금 확보에 공로(?)를 세운 여행사는 향후 축제 때 전담 여행사로 선정되는 '악의 고리'가 형성되는 셈이다.

관광 전문가들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올인하는 2023~2024년 '한국 방문의 해'를 앞두고도 이 같은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 측정 방식인 통신사 기지국을 활용한 방문객 수 측정에 신용카드사 매출까지 집계하는 방식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문객 수 부풀리기는 필연적으로 경제 파급효과 뻥튀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문체부에서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연구 용역을 통해 빅데이터 제도 개선을 추진했지만 활용도는 떨어진다"며 "지자체 발표 자료만 믿을 게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을 둔 선진국형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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