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돌려막기’ 칼 빼든 금감원... KB·하나 이어 주요 증권사 순차 검사 나선다
금융당국이 증권업계의 ‘채권 거래 관행’에 칼을 빼 들었다. 최근 하나증권과 KB증권을 대상으로 증권사 간 채권 돌려막기 관행에 대한 불법성 여부 검사에 나선 데 이어 키움증권과 교보증권 등 주요 증권사 9~10곳에 대해서도 순차적인 현장 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올해 주요 검사계획 중 하나로 꼽은 증권사의 랩·신탁 시장의 불건전 영업 관행 등에 대한 테마 검사를 이달 초 본격 착수했다고 24일 밝혔다.
금감원은 KB증권과 하나증권 2곳에 대한 현장 검사를 진행했다. 금감원은 지난주부터 하나증권에 대한 수시검사를 착수했다. KB증권은 지난 23일부터 검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이 단기 투자 상품인 머니마켓랩(MMW) 등 랩어카운트 상품과 신탁계좌에 유치한 자금을 장기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활용해 이른바 ‘채권 돌려막기’를 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KB증권이 평가손실을 숨기기 위해 하나증권에 있는 KB증권 신탁 계정을 이용해 자사 법인고객 계좌에 있던 장기채를 평가손실 이전 장부가로 사들였다는 게 골자다. KB증권은 900억원에 이르는 평가손실을 낸 뒤 이를 감추고자 하나증권과 불법적인 자전거래까지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전거래는 증권사 등 금융사가 운용하는 펀드나 계정 간 자금 거래를 의미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들이 높은 수익률을 위해 단기 랩·신탁 계좌에 유동성이 낮은 고금리 장기채권과 기업어음(CP)을 편입하는 등 만기 미스매칭을 통해 과도한 목표수익률을 제시하게 되면 자금시장 경색 및 대규모 계약 해지 발생 시 환매 대응을 위해 연계거래 등 불법·편법적인 방법으로 편입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며 “이는 법상 금지하고 있는 고유재산과 랩·신탁재산간 거래, 손실보전·이익보장 등에 해당될 소지가 있어 검사를 실시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금감원은 올해 3월 업무계획을 통해 증권사 신탁·랩 운용상 위험요인 및 채권 자전거래·파킹 등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한 검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증권사가 신탁, 랩어카운드 운용 과정에서 관행처럼 여겨져 온 자전거래나 파킹 거래 등 매매행위가 시장 변동성과 맞물려 자금시장의 잠재 불안 요인으로 확대될 수 있어서다.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랩·신탁 시장의 동향, 환매 대응, 특이사항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했으며 이후 회사별 랩·신탁고의 수탁고와 증가 추이, 수익률 및 듀레이션 등 기초 자료를 분석하고 시장 정보 등을 종합 고려해 검사 대상 회사를 선정하고 이달 초부터 현장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자전거래가 위법행위는 아니다.시행령상에서는 펀드 환매에 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경우와 투자자 이익을 해칠 염려가 없는 때에는 자전거래를 허용한다. 증권업계에서도 이러한 예외 조항을 들어 자전거래를 암묵적으로 인정, 매매를 해왔다.
그간 채권시장에서 통정매매와 자전거래는 사실상 같은 것으로 해석돼 왔다. 특정 증권사가 신탁과 랩어카운트 등에 편입된 기업어음(CP) 등 채권을 펀드 수익률 관리를 목적으로 사고팔아 돌려막기 거래를 하는 것이 용인됐던 셈이다.
금감원은 KB증권과 하나증권뿐 아니라 다른 증권사 간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불법 자전거래를 뿌리뽑기 위해 국내 주요 증권사들로 조사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자전거래나 만기 미스매칭 전략이 모두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번 검사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인정된 범위를 넘어서 뒷단에서 증권사 간 수익률 보전해 주는 불법 행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두 곳 증권사에 이어 다른 증권사들에서도 제도 허용 범위를 벗어난 불법 매매 행위가 있었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KB증권은 이를 전면 반박하고 있다. KB증권은 입장문을 통해 “계약 기간보다 긴 자산으로 운용하는 만기 불일치 운용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KB증권은 “상품 가입 시 투자자들에게 만기 불일치 운용 전략에 대해 설명했고 고객 설명서에 계약 기간보다 잔존 만기가 긴 자산을 편입해 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사전에 고지했다”며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다른 증권사와 거래를 한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기업어음(CP) 시장 경색이 일어나자 2차 고객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거래를 진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몽구 사위 회사에 무슨 일이?… 공석인 대표 자리에 난데없이 나타난 이차전지 전문가
- 반년 만에 시총 106조 증발… 잘나가던 中 태양광에 무슨 일이
- [재테크 레시피] 10년 수익률 40% 보장, 10만원부터 투자 가능한 이 상품은
- “빚 못 갚겠어요”…벌써 8만명 개인 채무조정 신청
- [급발진 불안감 사회] ① 작년 급발진 주장 교통사고 117건, 4년 만에 2배로 급증
- 한화시스템, '사우디 수출' 천궁에 1조2000억 규모 레이더 공급
- 베일 벗은 삼성전자 차세대 공정 로드맵… “인텔·TSMC 잡을 新무기 필요”
- 아이 낳으면 1억 주는 인천, 이번엔 ‘1천원 임대주택’ 내놨다
- “장마로 두 달 새 상추 가격 3배 올랐다”… 채솟값 폭등에 쌈밥집·고깃집 한숨
- 중국이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글로벌 골프웨어 ‘골드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