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포기할 수 없어”…유력 매장지 확인, 한·중 민간위원회 구성 추진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중국 뤼순(旅順)감옥에서 사망한 뒤 인근에 묻혔다. 그러나 10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안 의사가 매장된 정확한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6년과 2008년 두 차례 중국 현지에서 안 의사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진행됐지만 무위에 그쳤고 이후로 유해 발굴 사업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봉환을 위한 모임’이 결성된 가운데 민간 차원에서도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간 차원의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이는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이다. 황 전 처장은 2021년 대통령 특별사절단 단장으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과정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재임 기간 안 의사 유해 발굴에도 관심을 갖고 중국 측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인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안 의사 유해 발굴을 포기할 수 없었던 황 전 처장은 지난해 5월 퇴임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직접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유해 발굴에 필요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해 발굴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정확한 매장 장소를 찾는 것이었다. 황 전 처장은 안 의사 유해 매장 장소를 추적해 온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 김이슬 하얼빈이공대 박사와 함께 지난 14∼18일 뤼순감옥이 있던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를 찾아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황 전 처장 일행이 이번 현지 조사를 통해 가장 유력한 안 의사 유해 매장지로 확인한 곳은 뤼순감옥 터에 있는 ‘뤼순일아감옥구지(旅順日俄監獄舊址) 박물관’ 동쪽의 둥산포(東山坡)라는 지역이다. 둥산포는 2006년과 2008년 유해 발굴 작업 당시에도 유력한 매장지 가운데 한 곳으로 지목됐지만 당시 발굴 작업은 둥산포가 아닌 뤼순감옥 터 북쪽의 위안바오산(元寶山) 일대에서 진행됐다. 황 전 처장은 24일 “이번 현지 조사에 앞서 국내에서 관련 학자와 과거 안 의사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고 참고자료를 조사했으며, 현지에서도 유해 발굴에 참여한 중국 측 전문가와 향토 연구자들을 두루 만났다”면서 “이를 통해 안 의사 유해가 둥산포에 안장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안 의사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유력한 장소를 확인했지만 발굴 작업을 재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중국 측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중 관계 악화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황 전 처장은 “유력한 안장지를 확인한 만큼 이제 공은 정부에 있다”면서 “중국 측과 협조해 둥산포 일대에서 유해 발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외교적 역량을 모아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 전 처장 등은 이번 현지 조사를 계기로 민간 차원에서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 상설위원회’ 구성도 추진하기로 했다. 당장 정부간 협의 하에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지기는 어렵더라도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며 안 의사 유해 발굴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취지다. 중국 측에서도 이미 2006년과 2008년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왕전런(王珍仁) 전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 부관장 등 전문가들이 위원회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황 전 처장은 향후 위원회를 통해 한·중 양국에서 유해 발굴이 이뤄질 수 있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해 발굴 이후 해당 지역에 가칭 ‘동양평화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는 “민족 영웅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는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안 의사 유해가 하루 빨리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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