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솔직한 공개’ 한다더니 세수 재추계는 왜 감추나
“진단은 정확하게, 공개는 솔직하게, 판단은 균형 있게 해야 합니다.” 1년 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취임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경제 지표 등 통계를 입맛에 맞게 왜곡한단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전 정부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기재부의 자아 성찰이었다.
그의 취임 일성 후 기재부가 써낸 당시 고용동향 분석 자료에선 22년 만의 최대 취업자 수 증가 기록에도 불구하고 자화자찬보단 “직접 일자리 등 공공부문 취업자 증가 영향이 상당했다”는 문장이 담겼다. 전에 볼 수 없던 냉정한 평가 한줄에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의 기재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세수 펑크’ 위기를 맞닥뜨린 지금, 그의 취임사를 되돌아본다. 올해 1분기 87조원의 국세를 걷었고, 4월부터 연말까지 작년과 같은 규모로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연말 기준 국세 수입은 정부의 당초 추산치보다 29조원가량이 빈다.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며 1분기에만 역대 최대 수준인 54조원 규모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미 지난해 정부가 목표로 세운 연간 적자 폭의 93%를 채웠다.
추 부총리는 “올해 세수가 좋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경기가 (하반기)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그의 아래 실무자들은 “지금 연간 적자와 세수 추계 실패를 얘기하는 건 이르다”고 방어하기 급급하다. 이들의 말에 추상적인 희망이나 의지는 담겼을지언정, 구체적인 수치는 없다. 과연 정확한 진단은 이뤄지고 있나.
경제 정책 입안자가 ‘점쟁이’는 아니기에 세수 추계(推計)의 오차 발생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숫자를 맞추지 못했다고 힐난할 일도, 또 맞췄다고 칭송할 일도 아니다. 다만 한해 지출을 적절히 운용하고, 세법 개정에 대한 세수 변화 효과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세수 추계의 근본적 역할마저 저버려선 안 된다. 오차가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있다면 재추계를 통해 운용 여건을 재점검하고 적기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기재부는 재추계 값을 철저히 비밀리에 감추고 있다. 당초 올 초까지만 해도 재추계는 하지 않는다고 고수했다가 4월쯤 “내부적으로 재추계 작업은 늘상하는 것, 공개는 또 다른 문제”라며 미묘하게 달라진 뉘앙스를 풍겼다. 공개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 추 부총리는 “계속 공개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혼란이 일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공개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솔직한 공개를 약속한 그의 말이 무색하다.
이런 상황에서 추경호 부총리의 ‘추경(추가경정예산) 불호(不好)’란 원칙은 절대 불가침의 법칙처럼 고수되고 있다. 그는 기금 여유자금과 지난해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을 활용하고,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재정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자연적인 ‘불용(不用)’으로 메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의도적으로 예산 집행을 ‘강제 불용’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불용 예산 규모와 세계잉여금으로 추산해 보건대, 이렇게 아끼고 아껴서 마련할 수 있는 규모는 후하게 쳐도 15조~16조원가량이다. 현재로서 예상되는 세수 부족 분(29조원)에 한참 못 미친다. 추경 남발을 경계하는 의지는 매우 옳다. 다만 이런 현실을 맞닥뜨리고도 다른 선택지를 완전히 차단하는 단호함은 혹여나 원칙에만 집착하는 태도는 아닐까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미국·일본·독일·영국은 회계연도 시작 5~10개월 후에도 당해연도 세수를 재추계한다고 한다. ‘재추계도 또 틀릴까 봐’를 겁내는 것이 아니라면 정부는 재추계 값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솔직한 공개, 정확한 진단, 균형 있는 판단’은 이전 정부에만 들이밀고 버려선 안 되는 잣대일 것이다. 1년을 보낸 현 정부의 자기반성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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