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원작 애니메이션과 무엇이 다른가①

2023. 5. 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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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디즈니 애니메이션은 1937년부터 1942년까지 황금기를 구가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필두로 '피노키오' '환타지아' '덤보' '밤비' 등이 모두 높은 퀄리티로 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50년대와 60년대도 수준급의 작품을 내놓았다. '신데렐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 ‘잠자는 숲속의 공주’ '101 달마시안' '아더왕' '정글북' 등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66년 12월 월트 디즈니가 사망하면서 쇠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970년부터 1988년까지 지독한 암흑기에 빠졌다. 이 기간에 제대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

부진에 신음하던 디즈니에 1989년 ‘인어공주’가 구세주로 등장했다. ‘인어공주’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곱추' '헤라클레스' '뮬란' '타잔'에 이르기까지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1995년 픽사가 ‘토이 스토리’를 내놓으며 3D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본격 도래했지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왕국은 단단한 입지를 구축했다. 특히 ‘인어공주’는 1989년 당시 영화계에 흔치 않았던 ‘뮤지컬 장르’로 제작돼 이후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으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뮤지컬 시대를 열었다.

롭 마샬 감독은 30년이 훌쩍 넘은 시기에 디즈니로부터 실사화 연출 의뢰를 받았다. 그는 ‘에리얼’을 어떤 배우에게 맡길 것인가 고민했다. 우연히 그래미 시상식을 보다가 할리 베일리의 노래에 감동을 받았다. 마샬 감독은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이 사람은 누구지? 그녀를 데려왔다. 연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정말 천사 같고 다른 세계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일리가 '파트 오브 유어 월드'를 부를 때 노래가 끝날 무렵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베일리는 노래의 감정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그녀는 타고난 깊이가 있다”고 칭찬했다.

에리얼이 흑인여성으로 발탁되면서 원작과 다르게 ‘인종의 다양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영화에서 에리얼의 자매 인어들은 라틴계, 아시아계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됐다.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킹)의 어머니와 집사도 흑인배우로 캐스팅했다. 1989년 원작이 개봉한지 34년의 시간이 지났다. 세계는 그만큼 다양성을 존중하는 흐름으로 변해왔다. 디즈니는 ‘PC주의’라는 비판을 감내하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그 시대를 담아내야한다는 원칙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갈등 구조를 채택한 점이다. 마샬 감독은 원작을 다시 보며 에리얼과 에릭 왕자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둘 모두 각각 왕과 왕비에게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금지를 당한다. 그는 바다와 육지, 인어와 인간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고 두 세계의 다리를 놓은 이야기로 바꿨다. 그의 연출 전략은 대립과 반목으로 서로 으르렁거리는 현 시대에 화해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사진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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