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작약꽃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유

관리자 2023. 5. 2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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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봄이 왔나 했더니 오월 하순, 벌써 초여름이다.

<농가월령가> 에 '비 온 끝에 볕이 나니 날씨도 청화하다. 떡갈잎 펴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보리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잠농도 방장이라.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라더니 요즘 마을에서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

당시 작약 시세가 1㎏에 3000원 정도였지만 수확할 때쯤 더 비싸질 것이라는 말을 격려 삼아 정성껏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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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 심은 지 올해가 5년째
한약재 수입으로 가격 폭락
수확 어찌할지 난감한 상황
이웃사람 말 좇아 지은 농사
초보의 무지·게으름 탓인지
수급관리 정책의 문제인지

엊그제 봄이 왔나 했더니 오월 하순, 벌써 초여름이다. <농가월령가>에 ‘비 온 끝에 볕이 나니 날씨도 청화하다. 떡갈잎 펴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보리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잠농도 방장이라.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라더니 요즘 마을에서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 농사일은 때가 있으니 못자리를 준비하고 콩이며 깨를 심고 제법 자란 고추와 마늘 밭의 풀을 뽑고, 과일나무 적과한다고 온 마을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두어해 농사를 해보니 여의치 않아 꾀를 낸 것이 작약농사다. 옛날부터 작약은 관상용이자 의약품으로 재배해왔다. 근래에 바이오산업과 건강기능성 식품시장의 전망이 밝겠다는 판단과 함께 의성 작약이 한때는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전국적 명성을 가졌기 때문에 특화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믿었다. 더구나 작약은 한번 심은 후에는 몇해 동안 가꾸기만 하면 되니 일손을 덜 수 있다는 점도 이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5년 전 가을 300여평의 밭에 골을 넓게 타고 비닐멀칭을 한 뒤 대작약 1700여포기를 심었다. 당시 작약 시세가 1㎏에 3000원 정도였지만 수확할 때쯤 더 비싸질 것이라는 말을 격려 삼아 정성껏 가꾸었다. 심고 난 다음해부터 꽃이 피는데 얼마나 아름답던지! 꽃을 잘라주어야 뿌리가 굵어진다고 했지만 꽃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작약꽃으로 인연을 이어간다는 <시경>의 ‘증지작약(贈之勺藥)’ 사연을 따라 초파일에는 인근 사찰에 꽃 공양도 하고,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씨앗나눔도 하였다. 혼자 보기 아까웠고 사라져가는 의성 작약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작약을 심은 지 3년이 지나 수확할 때가 되었으나 가격이 낮으니 다음해에 캐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러려니 했다. 이듬해 가을에는 중국 작약이 수입돼 가격이 폭락했으니 또 기다려보자고 한다. 올가을이면 5년째, 뿌리가 썩기 때문에 더이상 수확을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찌해야 할지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작약을 포함한 구기자·당귀·황기 등 11개 품목은 보건복지부의 ‘한약재 수급관리 규정’으로 수입 여부와 수입량을 결정하는 품목이다. 수급에 관한 통계가 부실한 데다 같은 농산물도 용도에 따라 담당 부처가 따로 관리하니 가격이 떨어지는데도 수입을 하는 게 아닌가? 바이오산업이니 기능성 식품의 가능성을 강조하기 전에 기초가 되는 한약재의 생산과 수급에 관한 통계와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농림축산식품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흩어진 관리체계라도 정비하면 좋겠다.

조선조 좌찬성 벼슬을 한 강희맹이 은퇴 후 낙향하여 ‘농사나 짓겠다’ 하자 이웃 농부들이 웃으며 농사일이 선비가 벼슬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 한다. 그동안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도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했는데 어찌 농사를 짓는단 말이냐고 핀잔을 주자 무안해하며 농사를 접었다던가. <금양잡록(衿陽雜綠)>에 있는 강희맹과 농부가 나눈 대화로 그 분야의 고수가 돼야 천재나 인재는 물론, 임금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웃사람 말을 좇아 씨앗을 뿌리고 가꾼 농사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초보 농사꾼의 무지와 게으름 탓인지 아니면 관련 제도나 정책의 문제인지, 해야 할 공부는 제쳐놓고 부질없는 걱정을 사서 하니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올해는 흐드러지게 핀 작약꽃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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