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콩나물시루에 오페라 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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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가 키우는 콩나물시루를 보면 참 신기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콩나물을 보며, 분명 물 말고도 밥이나 김치찌개를 몰래 먹어 저렇게 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내일 아침 눈을 뜰 때, 우리의 음악 공기를 시칠리아의 오렌지 향기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영혼을 적시면 분명 하루의 시작도 달라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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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가 키우는 콩나물시루를 보면 참 신기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콩나물을 보며, 분명 물 말고도 밥이나 김치찌개를 몰래 먹어 저렇게 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올해 아홉살이 된 우리 아들은 콩나물무침을 좋아하고 엄마인 저는 늘 콩나물이 그려진 악보를 보며 씨름하고 있으니, 우린 콩나물과 인연이 좀 있는 가족인가 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콩나물이 자라나듯 사람의 영혼도 보이지 않는 양식을 먹으며 천천히 성장합니다. 내가 먹은 음식의 결과가 시간이 지나 우리 몸에 나타나듯, 다양한 방법으로 채워 넣은 영혼의 양식이 머리와 마음에 채워집니다. 그중에서 귀로 듣는 음악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지요.
얼마 전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트럭을 세워놓고 과일을 파는 사장님을 보았습니다. 손님이 없어 운전석에 편안하게 누워 창문을 열어 놓고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계셨는데 라디오에서 익숙한 오페라 아리아가 들려왔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주인공 토스카가 부르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과일을 파는 사장님은 정확한 이탈리아어 발음은 아니었지만, 가사를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오페라 애호가가 아니라면 가사를 외우기 쉽지 않을 텐데, 순간 팔고 있던 과일마저 멋있어 보였습니다. 골목을 돌면 비련의 여주인공 토스카가 죽음을 위해 몸을 던졌던 산탄젤로 성과 함께 늘 그리웠던 로마의 풍경이 펼쳐질 것만 같았습니다.
귀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아침에 한번 들었던 노래가 온종일 맴도는 것을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내 안에 흡수된 음악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지요. 깨끗한 공기로 호흡하며 건강을 유지하려고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좋은 음악으로 건강한 음악 공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눈에 보이는 인테리어를 더욱 빛나게 해주듯이, 아주 호화스러운 집이 아니어도 노래 한 곡으로 우리의 작은 일상을 얼마든지 세련되고 멋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꽃들이 만발하고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에 나오는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Gli Aranci Olezzano)’를 추천합니다. 부활절을 맞아 고된 일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이 합창은 상큼한 오렌지만큼이나 너무나 싱그럽고 달콤하답니다. 이 오페라는 지중해 바다와 뜨거운 햇볕으로 키운 붉은색 오렌지가 유명한 이탈리아 최남단 섬,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나는 계절에 부드러운 노래를 속삭인다”라는 가사처럼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시칠리아 평원의 오렌지나무 사이로 포근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눈을 뜰 때, 우리의 음악 공기를 시칠리아의 오렌지 향기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영혼을 적시면 분명 하루의 시작도 달라질 테니까요.
이기연 이기연오페라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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