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으로 썰고 싶다” 악플 세례… 민노총에 맞선 연대생의 1년 악몽

이혜진 기자 2023. 5.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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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소음급 교내 집회 고소 후 ‘타깃’ 돼… 1년간 정신과 치료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를 고소한 이동수 씨. /본인 제공

“‘민노총의 쟁의행위는 위법이라도 처벌을 못 하고, 노조는 법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지난 1년이었습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이동수(24)씨는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노총이 수업 시간 교내에서 앰프와 꽹과리를 동원해 기차(汽車) 소리에 가까운 소음을 일으켜 가며 집회를 연 데 대해 제기한 형사 고소를, 지난주 경찰이 최종 ‘무혐의’로 처분한 데 대한 소회였다.

이씨가 다짜고짜 고소를 한 건 아니었다. 고소에 앞서 민노총에 직접 7번이나 소음 자제를 부탁했고, 학교와 112에 신고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마지막 선택이 경찰이었다. 이씨는 “하다 하다 안 돼서 법에 기댔는데, 그마저 실패했다”고 했다.

이씨는 2020년 코로나 사태 당시 대학생이 됐다. 2년 비대면 수업을 거쳐 3학년이 된 작년 3월에야 처음 대면 수업에 참석했다. 설렘도 잠시. 3월 말(이하 2022년)부터 민노총의 교내 집회가 시작됐다. 매주 월요일, 이씨 영어 강의가 있는 시간대 1시간씩이었다. 교내 집회는 이씨가 수업을 듣는 백양관 근처 백양로에서 열렸으며 종종 백양관 앞에서도 열렸다.

요구 사항은 청소·경비 노동자 임금 인상 등이었다. 이씨는 “집회 소음으로 교실에서 교수님이나 발표자의 발언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씨가 직접 측정하고 영상으로도 남겨놓은 이 집회의 소음은 최대 95㏈. 공장 소음(90㏈)과 기차 소음(100㏈)의 중간 수준이다. 집회시위법 시행령은 낮이라도 주거지역, 학교, 종합병원에서는 소음이 65dB을 넘어선 안 된다.

이씨는 4월 들어 집회 현장에 다섯 번 찾아가 ‘스피커 볼륨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번번이 돌아온 대답은 “확성기 소리를 줄이면 우리의 힘(협상력)을 빼앗긴다. 더 줄일 수 없다”는 것.

‘청소노동자‘를 앞세운 이 집회를 진보당 선거 유세장으로 활용하는 일도 있었다. 4월에는 지방선거에 출마한 진보당 서대문구의원 후보자가 이 집회에 참가해 현장에서 선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작년 4월 연세대 교내 집회에서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진보당 손솔 서대문구의원 후보. /이동수 씨 제공

현장 대화에 실패한 이씨는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대표 이메일 주소로 두 차례 글을 썼다.

‘노동자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학생 수업을 방해하는 방식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현수막으로도 충분히 학생들에게 의사가 전달되고 있습니다.’

답장은 없었다.

그다음 선택한 방법은 112 신고. 4월 하순부터 3차례에 걸쳐 신고했다. 소용없었다. 집회 중 경찰이 오면 민노총은 잠깐 확성기 소리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했다. 출동한 경찰관에게 “미신고 집회인데 왜 해산 조치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학교 사유지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학교의 해산 요청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작년 5월 10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서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분회가 앰프(사진 앞쪽 가운데)를 세워놓고 청소·경비 근로자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독자 제공

그래서 이씨는 학교를 찾았다. 총장실을 찾아갔지만 총장 대신 직원을 만났다. 총무팀에도 찾아갔다. 대답은 같았다. “학교로서 해줄 방법이 없다. 경찰에 신고해도 미온적으로 대처한다”고 했다.

결국 이씨는 5월에 경찰서를 찾아가 고소장을 접수했다. 피고소인은 집회를 주도한 ‘민노총 연세대분회장’ 단 1명이었고, 혐의는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이었다. 그다음 달엔 손해배상 600여 만원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졸업한 이후에도 후배들도 똑같은 고통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동수 씨가 연세대 총무팀으로부터 받은 메일. /이동수씨 제공

이씨의 고소는 연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이씨에 대한 비난도 있었지만, “적극 지지한다” “후원하고 싶다” 등의 응원도 많았다.

하지만 방송 보도가 나가면서 이씨는 일방적인 악플의 타깃이 됐다. 이씨는 “민노총 간부를 상대로 한 고소를 마치 힘없는 일반 청소 노동자 전체 상대인 것처럼 방송이 왜곡했다”고 말했다. 한 방송사는 손해배상금 600여 만원을 “청소 노동자 월급의 4배”로 소개하면서 기사에 “볼륨을 많이 낮춰서 집회했다”는 노조 측 일방 주장을 담았다.

이런 기사가 나가자 ‘톱으로 얼굴 산 채로 썰어 버리고 싶다’ ‘6개월 안에 자살하게 만들겠다’ 등의 악플이 달렸다. 이씨는 변호사를 통해 악플을 모아 모욕죄로 한꺼번에 고소했다. 26일까지 이씨가 통지서로 확인한 바로 수십건의 악성 댓글 대부분을 경찰은 ‘불송치’ 처분했다. 특히 ‘톱으로 얼굴 산 채로 썰어 버리고 싶다’는 댓글에 대한 불송치 사유는 ‘일회성 불만 표현이라서’였다. 경찰 주장과 달리, 모욕죄는 단 한 번의 행위로도 성립되는 범죄로 수사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에 송치된 건은 현재까지 7건인데 약식기소는 1건뿐, 나머지는 ‘혐의없음’ 또는 ‘기소유예’였다. 이씨는 “지금까지 경찰에서 온 수사 통지서를 읽어보면 대부분 ‘불송치’ 결정과 함께 ‘악성 댓글’ 내용이 적혀있어서 통지서를 열어보기가 힘들다”며 “‘6개월 내에 이동수를 자살하게 만들겠다’는 댓글도 있는데, 정말 내가 자살해야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민노총 상대 고소도 줄줄이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작년 12월엔 업무방해가, 이달 중순엔 집시법 위반이 무혐의로 처리됐다. ‘정당한 쟁의행위여서 민형사상 면책’이란 취지였다. 불기소 이유서엔 ”어느 정도 소음 발생은 부득이”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뤄져” 등의 내용이 적혔다.

이씨는 “일반 국민이 신고도 없이 넉 달간 매주 1시간씩 기차 소음을 내며 집회를 했어도 이렇게 처리했겠느냐”고 했다. 그는 우울증, 불안 장애, 공황 장애 진단을 받고 지난달까지 1년 가까이 약을 먹었고, 지금도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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