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부추기는 언론 문화, 이젠 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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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보도라는 일상의 업무에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언론인이 부쩍 늘어난 가운데 그 실태와 원인을 밝혀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자리가 지난 19일 열렸다.
그동안 언론인의 의무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언론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에 주목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언론인 트라우마의 원인과 해결책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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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보도라는 일상의 업무에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언론인이 부쩍 늘어난 가운데 그 실태와 원인을 밝혀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자리가 지난 19일 열렸다. 그동안 언론인의 의무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언론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에 주목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다. 이날 주요 언론단체 및 학계·의료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언론인 트라우마 위원회’는 약 3년간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기자 직군이 트라우마 고위험군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기자들이 실제 겪고 있는 트라우마 사례를 공유했고, 취재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트라우마 유발 요소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가이드도 제시했다.
특히 위원회는 언론인의 트라우마 문제를 풀 주체로 기자 개인이 아닌 언론사 조직에 주목했다. 현행 언론의 조직 문화는 언론인을 트라우마에서 보호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트라우마를 부추길 수 있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언론사 특유의 능력주의 문화를 보자. 사실 기자들은 직업상 트라우마 사건을 자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취재 과정에서 살인·성폭력 등 잔인하고 충격적인 사건에 반복 노출되고, 피해자 및 유가족을 직접 만나며 정서적 소진을 겪는 일도 잦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 경찰·소방공무원 등과 함께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전까지만 해도 언론계에는 트라우마라는 단어조차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잔혹한 사건의 충격을 극복할 수 없다면 기자 자질이 없는 것이라는 평가가 만연한 가운데 기자들은 내면의 고통을 외면한 채 언제나 입을 다물었다.
‘모로 가도 특종만 하면 된다’는 성과주의 문화는 또 어떤가. 한번 ‘무능한 기자’로 찍히면 쉽게 평판을 뒤집기 어려운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장의 유족을 따라가 ‘괜찮은 멘트’를 따오라는 데스크의 지시는 거절할 수 없는 압박이다. 이때 고통을 파헤치는 언론에 유족은 큰 상처를 입고 원치 않는 인터뷰를 하는 기자 역시 ‘도덕적 상해’를 입는다. 이런 취재는 건강하지 않은 보도 결과물을 낳아 독자들마저 트라우마를 겪게 한다.
이런 잘못된 취재 관행이 낳은 생채기들은 언론이 원칙을 지키기만 했어도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이 더욱 안타깝다. 예컨대 유족 취재로 인한 기자들의 트라우마 대부분은 ‘이들을 괴롭히면서까지 인터뷰를 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딜레마에서 비롯한다. 이 경우 취재 전 데스크와 현장 기자가 유족 취재의 의미와 중요성을 충분히 상의하고 기자의 취재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설령 트라우마가 남더라도 윤리적인 취재 과정을 거쳤다면 회복이 더 빠르다고도 한다.
우리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언론인 트라우마의 원인과 해결책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이제 필요한 건 실질적인 변화다. 기자 트라우마는 결코 개인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전문가의 목소리에 언론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산업재해성 정신 건강의 위기를 피하려면 조직 차원의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원칙을 잃고 자극적인 보도만 추구하게 만드는 과열된 취재 경쟁도 삼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현직 기자 54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료 10명 중 8명이 근무 중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한다. 기자들의 정신 건강 위기는 더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건강한 기자가 건강한 보도를 하고, 독자들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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