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첫 여성 우주인 탄생…빈살만의 ‘개혁 군주’ 이미지 뒤 그림자도 여전

손우성 기자 2023. 5. 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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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운전 허용 등 사회 참여 문턱 낮춰
네옴시티 건설 ‘비전 2030’ 야심차게 추진
원주민 박해·사형 집행 증가 ‘공포정치’도
사우디아라비아 첫 여성 우주인 레이야나 바르나위(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2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한 뒤 유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첫 여성 우주인 레이야나 바르나위를 태운 미국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민간 우주선 ‘크루 드래건’이 22일(현지시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줄기세포 연구원이었던 바르나위가 우주로 향할 수 있었던 배경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아래 사진)가 추진하는 ‘비전 2030’이 있었다. 빈살만 왕세자는 비전 2030을 통해 사우디 경제·사회 시스템 개혁을 도모했고, 특히 여성의 사회 참여를 프로젝트의 주요 키워드로 삼았다.

사우디 현지 매체는 바르나위의 ISS 도착 소식과 함께 빈살만 왕세자의 ‘개혁 군주’ 이미지를 강조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의 지원으로 사우디가 여성 우주인을 배출했다는 찬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비전 2030의 어두운 단면도 잊어선 안 된다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네옴시티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 박해와 급증하는 사형 집행 건수 등 빈살만 왕세자의 공포 정치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영 사우디통신(SPA) 등에 따르면 바르나위는 이날 ‘크루 드래건’이 ISS 도킹에 성공한 뒤 생중계 영상에서 “이 캡슐에서 지구를 보고 있으니 정말 놀랍다”며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고향에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사우디인의 희망과 꿈을 대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빈살만 왕세자 덕분에 지금 나는 미세한 중력을 느끼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바르나위는 전날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된 ‘크루 드래건’에 승선해 남성 동료 3명과 함께 우주로 향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생체의학을 공부한 뒤 사우디에서 10년 가까이 암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다. 우주 분야와는 상관없는 길을 걸었지만, 사우디가 지난해 진행한 여성 우주인 선발 프로젝트에 합격하며 탑승 기회를 얻었다.

사우디 우주 비행 계획은 빈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일환으로 시작됐다. 빈살만 왕세자는 2016년 4월 석유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부문 경제 기여도를 높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했다.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 등 3대 영역으로 구성됐는데, 빈살만 왕세자는 “여성의 사회 참여를 통한 실업률 해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사우디 안팎에선 개혁 군주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빈살만 왕세자의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2018년 6월부터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1980년대부터 이어진 여성의 콘서트와 영화 관람 금지 조처도 해제했다.

스페이스X는 사우디 당국이 우주 비행 비용으로 얼마를 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해 ISS 비행 때 1인당 5500만달러(약 730억원)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이상의 투자금이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비행으로 비전 2030 폐해가 가려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전 2030 중요 사업인 초대형 미래도시 네옴시티 건설은 원주민 박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네옴시티 건설 공사가 시작되자 이 지역에 살던 약 2만명이 터전을 잃었고, 네옴시티 조성을 비난했던 후와이타트 부족 3명이 사형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6일 연례 사형현황 보고서를 발표하며 사우디의 사형 집행 건수가 2021년 65건에서 지난해 196건으로 치솟았다고 주장했다. 12개 국제인권단체는 지난 18일 사우디가 비전 2030 하이라이트로 여기는 엑스포 유치전에서 사우디를 제외해달라는 탄원서를 국제박람회기구(BIE)에 전달했다.

또 자말 카슈끄지를 비롯해 체제 비판적인 언론인과 활동가들을 암살하거나 체포하고, ‘중동의 학살자’인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아랍연맹 복귀를 진두지휘하는 등 “빈살만 자신이 비전 2030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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