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를 ‘그것’으로 지금 여기 없는 것의 자리를 만들다
오은의 여섯 번째 시집 <없음의 대명사>(문학과지성사) 시 제목은 대명사들이다. 제1부 ‘범람하는 명랑’엔 ‘그곳’ 3편, ‘그것들’ 6편, ‘그것’ 17편, ‘이것’ 1편, 제2부 ‘무표정도 표정’엔 ‘그들’ 9편, ‘그’ 9편, ‘우리’ 9편, ‘너’ 5편을 넣었다.
‘그곳’이란 제목의 여러 시 중 하나는 이렇게 끝난다. “아무도 그곳을 부르지 않아서/ 그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시의 그곳에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만났지, 인사했지, 함께 있었지. 어떤 날에는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했지. 죽자 사자 매달리기도 했지. 죽네 사네 울부짖었을 때, 삶보다 죽음이 앞에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그곳에서 “내 앞에 네가 있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그곳’은 어디일까? 집, 학교, 직장일 수도 여행지일 수도 있다. 만남과 관계를 다진 마음의 공간 같기도 하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오은의 대명사 모두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인 ‘거시기’다. 시집의 시공간과 심상의 공간은 이 거시기한 대명사들 덕에 더 넓어진다. 문학평론가 오연경은 “ ‘그것’이라는 텅 빈 대명사 하나를 던져놓고 신나게 변죽을 울려 우리로 하여금 꽉 찬 의미를 낚아 올리게” 한다고 했다.
‘없음의 대명사’가 무엇인지는 짐작해본다. 차례 앞 시인의 말은 다음과 같다. “ ‘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 ‘잃었다’라는 술어 앞에 시 제목으로 쓰인 각각의 대명사를 넣어본다. ‘그것을 잃었던 자리’ ‘너를 잃었던 자리’. 각각의 대명사엔 부재, 상실, 아픔, 망각이 서린 듯하다. 고유명사도 하나 넣어본다. ‘세월호 아이들을 잃은 자리’. 술어 앞 고유명사를 기억해내거나, 호명해 다시 살려야 하는 과제가 남은 듯하다.
오연경은 해설에서 “ ‘잃었다’는 것은 무언가가 지금-여기에 없음을 의미하면서 언젠가 여기에 있었음을 전제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 ‘없다’와 ‘있었다’ 사이의 시차와 간극을 메우는 것이 우리의 슬픔이다. 더 이상 ‘이것’으로 가리킬 수 없는 대상을 다시 말속으로 불러내기 위해 ‘그것’을 열렬히 호명한 이번 시집에 가득한 것은, 그러니까 슬픔이다. 시인의 대명사는 잃어버린 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있게 한다. 시인과 독자는 ‘그것’을 매개로 마주 보고 말을 나누어서, 그사이 입김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지금-여기 없는 것들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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