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는 왜 '최강야구'에 드라마 수준의 회당 제작비를 쏟아붓는 걸까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3. 5. 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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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없는 예능 ‘최강야구’, 시청률 아닌 비즈니스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강야구>는 리얼리티 예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외연을 한 번 더 확장한 콘텐츠다. 장시원 PD는 스스로를 단장이라 하고, 사무실을 단장실이라 부른다. 이대호와 같은 슈퍼스타가 합류하고, 대규모 트라이아웃을 실시해 엔트리도 확장했다. 무엇보다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김성근호'가 항해를 다시 시작하면서 스포츠 만화 같은 서사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한국야구를 호령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뜨겁게 장식하고 떠났던 인물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고 다시 구슬땀을 흘리며 승부욕을 불사른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정작 본 촬영 중에 제작진이 개입하거나 진행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유일하게 주어진 역할은 운동장 이곳저곳을 충실히 담아내는 중계다.

SBS <스토브리그>가 좋은 각본의 드라마였다면, <최강야구>는 각본 없는 예능이다. 제작진의 역할을 프론트로 한정하고, 방송인, 연예인이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스포츠 예능이 연예인들이 식당을 차리는 수준의 리얼리티를 넘어서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스포츠예능이 대부분 '경기' 안의 볼거리나 캐릭터의 성장에 집중한다면, 이들은 하나의 야구 구단을 운영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더 나아가 프로팀과의 접점도 늘려가며 일종의 올스타전을 리그화한 것과 같은, <최강야구>만의 새로운 야구 이벤트를 야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예매가 어려울 정도의 경기 매진 사례나 굿즈 쇼핑몰 운영 등 프로그램 내에서 만들어진 영향이나 이야기가 실제 KBO리그, 야구팬들과 상호작용을 이룬다.

<최강야구>가 지난 시즌부터 발휘해온 순기능은 진심으로 한국야구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유망주들이 대중에 소개되었고 이승엽 감독부터 코치진, 한경빈, 윤준호, 류현인 등 최강몬스터즈 소속 출연자들이 KBO리그로 진출하는 확실한 아웃풋을 보여줬다. 이런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인하면서 시즌2에서는 독립리그, 아마 선수뿐 아니라 야구 유튜버로 활약 중인 비선출 출신 사회인 야구 선수의 꿈까지 품었다.

신인왕 출신으로 화려한 시즌을 몇 차례 보내기도 했지만 일찍이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 신재영 선수나 지난 시즌 말부터 부활한 이대은 선수처럼 야구 인생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례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토대는 <슬램덩크>의 안 감독님처럼 야구 현인의 면모를 가진 김성근 감독의 영향력에 크게 기댄다. 그가 전면에 나섰다는 데서 이들의 야구는 진짜로 여겨지고, 인생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최강야구>는 김성근 감독을 비롯해 기존 은퇴 선수들의 커리어를 기억할 때 재미가 배가되는 예능이다. 정근우와 이택근 등 커리어 평균 3할대의 안타 제조기들이 1할 타율을 못 만드는 뒤틀린 현실이 재미가 된다. 정해진 승률을 지키지 못하면 자동 폐지라는 배수의 진에다가 이번 시즌을 이끄는 김성근 감독의 '빡센' 야구관과 외골수 타입의 캐릭터가 더해져 승리가 필요한 이유가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이름값 높은 선수를 캐스팅했다는 현실논리 고려나 혹여나 불성실 등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즌 초반부터 패배가 일찌감치 쌓여가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곳은 역시나 김성근 감독이다. 그라면 해법을 찾아낼 것이란 기대의 불을 지핀다. 어차피 프로팀은 아니고 대부분의 은퇴 선수들이다보니 김성근 감독 야구에 대한 호불호가 나올 거리도 적다. 야구팬임이 확실한 시청자들 익히 알고 있는 김성근식 '펑고'로 패배의 쓰린 속을 달래며 와신상담한다. 이처럼 경기장에서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OB' 올스타를 만나는 재미와 함께 생각보다 말이 많은 이대호, 생각보다 세심하고 따스한 김성근 감독 등 그간 알았던 스타 선수와 감독을 보다 가깝게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친밀감이 <최강야구>가 야구 팬덤을 사로잡은 정서적 근간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측면에서 <최강야구>가 가진 근본적인 핸디캡이기도 하다. 무려 2시간 넘게 야구 중계를 보여주는 예능이다. 아무리 내용이 재밌고 의미가 있어도 야구, 특히 이 시절 KBO에 추억이 없다면 유입에 한계가 명확한 덕후 콘텐츠다. 따라서 <최강야구>를 성공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선 확장성보다 타깃 시청자들의 충성도를 끌어낸 데 높은 점수를 준다. 오로지 야구 관계자들만 출연하는 이 예능의 타깃은 모든 예능 콘텐츠 중 가장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영광을 지켜본, 한국 야구의 국제적 경쟁력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KBO를 즐겼던 야구팬들. 세대로 따지면 30중후반~50대이고 정서적으로는 이른바 '남초'라고 알려져 있는 스포츠 커뮤니티의 감수성에 익숙한 이들이 주요 관객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덕후 콘텐츠에 현존하는 예능 중 가히 최강 물량을 투여하고 있다는 거다. 오늘날 예능이 번뜩이는 젊은 에너지와 작은 규모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웹예능으로 패러다임이 넘어간 이후 기존 방송사들의 출구전략 중 하나가 규모의 경제로 승부를 보는 대형화다. 예를 들면 K-팝 오디션 콘텐츠 등도 비슷한 부류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수준의 회당 제작비가 지속적으로 투여되는 <최강야구>는 예능의 생존이란 측면, 예능의 미래란 관점에서 지켜볼만한 흥미로운 사례다. 이런 프로그램의 평가가 쌓이면서 앞으로 기획과 투자의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청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는 요즘 예능 환경에서 대형화된 팬덤 콘텐츠가 어떤 생존전략과 비즈니스 모델로 시청자들과 지속적으로 호흡해나갈 수 있을지 이들의 도전을 지켜봐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최강야구>에 있다. 그래서 이들의 생존을 건 야구 게임만큼이나 예능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 이들의 행보에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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