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노리는 日...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존재감↑

2023. 5. 2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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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건설현장의 모습. 최근 일본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4% 증가하며 3분기 만에 플러스 성장했다. [AFP]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잃어버린 30년 후, 이제 전세계가 일본을 지켜보고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

일본 경제가 30년 넘게 이어진 장기불황을 딛고 부활하고 있다. 팬데믹(대유행) 이후의 침체를 모두 되돌렸고, 불확실한 글로벌 경기 전망 속에 안정된 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몰리고 있다.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증시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일본 대표지수인 닛케이225는 8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31086.82로 마감했다. 32년 9개월만에 최고치다. 일본 도쿄증시 1부를 모두 반영한 토픽스(TOPIX) 지수 역시 7거래일 연속 오르면서 2175.9로 장을 마쳤다.

앞서 지난 19일 블룸버그는 자체 집계를 통해 일본 증시 가치가 지난 1월 초 최저치를 기록한 후 5180억달러(688조1600억원)가량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일본의 위용이 돌아왔다’는 제목의 기사를 최근 내보냈다. FT는 싱가포르은행 보고서를 인용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다른 주요 7개국(G7) 지도자들이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거시경제 상황을 이끌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잃어버린 30년’으로부터 일본 경제의 활력을 되찾게 해줄 요인으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인플레이션 상승세 ▷신임 일본 중앙은행 총재의 통화완화적 기조 유지 ▷기록적 엔저 등을 꼽았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4%, 연율로는 1.6% 증가했다. 3분기만에 플러스 성장이다. 여행과 외식 등 서비스 부문 소비가 코로나 팬데믹 영향을 회복하면서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 소비가 전 분기보다 0.6% 늘었다.

무엇보다 오랜시간 제자리걸음 해 온 임금이 30년만에 최대치로 올랐다. ‘저임금’이 ‘소비 침체’로, 다시 ‘저성장’으로 이어졌던 악순환이 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최근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거시 경제 운용과 관련해 “올해는 30년만에 가장 높은 임금 인상과 물가의 안정적 선순환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의 호실적도 예고됐다. 최근 니혼게이자이 조사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에 상장된 1067개 기업의 순이익은 내년 3월 끝나는 회계연도 기준 전년대비 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부채한도 문제와 경기 침체 가능성, 그리고 중국의 불안정한 경제 회복 속에 좌절한 투자자 사이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한 남성이 닛케이 지수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닛케이 지수는 7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30808.35로 마감했다. 33년만에 최고치다. [AFP]

‘가치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주식 추가 매수 의향을 드러낸 것도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했다. 버핏 회장은 지난 4월 방일 당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0년 후 일본과 미국은 지금보다 성장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투자할 만한 일본 기업 주식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굳건한 통화부양책으로 증시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은행 총재가 새로 부임하면 긴축이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우에다 가즈오 신임 총재는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앞서 도쿄증권거래소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제고를 요구한 것도 일본 증시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 이후 다이이치생명홀딩스는 자사주 1200억엔(약 1조1800억원)을 매입하기로 했고 미쓰비시상사도 22억달러(약 2조9400억원) 자사주 환매 계획을 밝혔다. 투자자들은 이런 움직임이 확산할 것으로 기대하며 저평가된 기업들의 주식을 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

최근 일본 경제가 맞고 있는 ‘회복 모멘텀’의 배경에는 지정학적 변화의 영향도 크다. 주요 선진국들이 중국의 위협에 맞서 견제의 날을 세우고 잇는 가운데, 중국을 벗어난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재편과정에서 일본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미국의 마이크론 등 세계 7개 반도체 기업 대표들은 G7 회의 전날인 지난 18일 기시다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일본에 제조공장 및 연구개발 센터 설립 등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윌콕스 노무라증권 기업금융책임자는 “중국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에게 희소식”이라며 “아시아에 투자를 원하는 이들이 향후 5년에서 10년에 걸쳐 투자를 하게될 명확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다만 글로벌 경기 침체 전망과 대조되는 일본의 ‘나홀로 성장’이 장기적 추세가 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등 세계 경제의 불황이 현실화할 경우 수출 주도의 일본 경제가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최대 무역국은 여전히 중국이다. 때문에 중국의 저성장이 고착화될 경우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블룸버그는 “세계 경제의 둔화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일본 수출업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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