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합시다” 해외서 쏟아지는 러브콜… 치솟는 세계 속 ‘한국 문학’ 위상

박세희 기자 2023. 5. 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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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한국서 해외출판사 설득
이젠 세계 영향력 큰 곳서 출간
저작권 선계약후 번역지원 늘어
2014년 11건→작년 164건으로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이야기로
SF·판타지 등 수출 장르도 다양
문학 수출국 ‘아시아 편중’ 한계
美·유럽 등으로 인지도 키워야
게티이미지뱅크

3월엔 프랑스, 4월엔 스페인, 5월엔 호주, 9월엔 독일, 10월엔 폴란드, 연말엔 미국. 어느 K-팝 스타의 월드투어 일정이 아니다. 지난해 ‘저주토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일정이다. 그는 요즘 브리즈번 작가축제, 인터내셔널 문학축제 등 전 세계에서 열리는 문학축제에 참가해 독자들과 만나며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K-팝’, ‘K-드라마’에 이은 ‘K-문학’.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이제 세계 문학계에도 ‘한류’ 돌풍이 시작되고 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돌풍은 ‘착각’”이라며 “아직 한국 문학은 비주류”라고 일침한다. 천명관의 ‘고래’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라 24일 발표를 앞두고 있는 지금, 세계 속 한국 문학의 위상을 최근 한국 문학의 수출 트렌드와 함께 짚어봤다.

◇자발적 출판 늘고 출간 빨라져… 장르도 다양

최근 세계 속 한국 문학의 경향은 자발적·자생적 출판이 늘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문학의 수출 사례들은 주로 한국문학번역원과 같은 기관에서 번역 출간 기획을 하고 해외 출판사와 협업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작품을 정하고 해외 출판사를 설득해 계약을 맺는 일방적인 방식이었던 것. 그러나 이젠 해외 출판사들로부터 수출 계약 문의가 먼저 온다.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부커상 전신)을 수상해 새 역사를 쓴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전 세계 출판사의 요청으로 40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는 역대 최고 선인세인 3억 원에 수출됐다.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했거나 후보로 선정됐던 이들의 경우 노미네이트됐던 작품뿐 아니라 그 이후 나온 신작이나 이전에 낸 구작에도 관심이 높다. ‘저주토끼’는 현재 18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치열한 경쟁 끝에 ‘저주토끼’의 미국 판권을 사간 다국적 출판그룹 아셰트사의 자회사 알곤퀸은 최근 그의 단편선 ‘그녀를 만나다’ 판권도 사 갔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해외 출판사가 특정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겠다고 출간 계획을 밝히며 번역 지원을 신청하는 사례도 2014년 13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08건으로 늘었다. 해외 출판사가 저작권 계약을 먼저 한 뒤 번역 지원 사업에 공모하는 사례 역시 2014년 11건에서 지난해 164건으로 증가했다.

시장이 한국 문학을 먼저 찾기 시작하면서 국내 신작이 해외에 출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크게 줄었다. 기관 주도 번역 출간의 경우 3년 이상 걸리는 데 비해, 해외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계약하면 실제 출간까지 1∼2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인 작가, 또는 출간된 지 1∼2년 이내인 신작이 빠르게 해외에서 출간되고 있다. 2020년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2021년 러시아어, 2022년 독일어, 튀르키예어, 베트남어로 빠르게 번역돼 출간됐다.

해외에서 출간되는 한국 문학의 장르가 다양해진 것도 특징이다. 지난 한 해 동안 3종 이상 번역서를 출간한 작가를 보면 정유정, 김영하, 한강, 김애란, 장강명 등 중견 작가들과 더불어 김초엽, 배명훈, 정보라, 이미예 등 과학소설(SF)·판타지 장르 작가들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해외 유수 출판사들의 한국 문학 출간도 눈에 띈다. ‘K-스릴러’ 대표작가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 지금까지 22개국과 판권 계약을 마쳤는데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출판사 펭귄북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출판사 피키에와 계약하며 한국 문학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한국 문학의 국제 수상 및 입후보 사례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저주토끼’와 함께 지난해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1차 후보에 올랐고 손원평이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으로 일본서점대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는 프랑스 내 아시아 문학 활성화를 위해 제정된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에 입후보했다.

한국 문학의 인기 요인으로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시공간의 해체’를 꼽았다. 한국의 특수성이 짙게 밴 전후 소설 양식에서 벗어나 세계 어디서도 통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한국 젊은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한국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해외 독자들이 봐도 ‘나의 이야기’라고 인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편중은 숙제… 작가, 작품 인지도 키워야

하지만 한국 문학이 수출되는 지역이 치우쳐있다는 점은 문제다. 한국의 도서저작권 수출 통계를 권역별로 보면 아시아 권역이 전체의 89.1%, 유럽 9.8%, 북미 0.6%, 남미와 중동이 각각 0.2%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권의 핵심인 미국과 영국 출판시장 내 한국 문학의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영국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한류의 대중화가 문학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미쳤으나,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위해서는 작가와 작품 위주의 인지도 성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유능한 번역가 발굴 및 지원도 큰 숙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을 수출한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한국 문학을 우리가 소개하기 전에 해외에서 문의해온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이 세계의 중심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가능하다”면서도 “유능한 번역가 발굴 및 지원 등의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주토끼’와 ‘대도시의 사랑법’을 번역해 두 작품 모두 부커상 후보에 올린 번역가 안톤 허는 “10년 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번역 지원금의 액수 때문에 저조차 번역계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며 “번역가의 생계가 계속 위협받는 한, 해외에서의 한국 문학 열풍 따위는 없다”고 강조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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