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로선 끝났다 생각했는데”…소통 리더십이 연 ‘상식의 시대’
3관왕 일군 김상식 KGC인삼공사 감독
잇단 감독대행 험난한 여정 끝 ‘정점’에
[주간경향] 지난 5월 7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한국프로농구(KBL) 챔피언 결정전 최종 7차전. 치열한 연장전 승부 끝에 홈팀 안양 KGC인삼공사의 100-97 승리를 알리는 버저가 길게 울리자 KGC 김상식 감독(55)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40여년 농구인생의 정점을 찍는 기쁜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그야말로 만감이 스쳐갔다.
“순간적으로 울컥 감정이 솟구쳤어요. 두 코치(최승태·조성민) 얼굴을 보니 벌써 울고 있더라고요. 정규리그, 챔프전 통합우승에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까지 3관왕. 이런 거는 남들한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훌륭한 사람의 일로만 알았는데. 농구 지도자로서는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SK와 벌인 챔프전은 역대급 드라마였다. 첫판을 지고 반격에 나서 4차전까지 2승 2패로 균형을 맞췄지만 5차전을 내줘 벼랑 끝에 몰렸다. 한 판만 더 지면 정규리그 1위의 영광마저 퇴색될 위기. 하지만 김 감독을 비롯해 팀의 기둥인 오세근과 배병준, 변준형, 문성곤, 박지훈, 오마리 스펠맨, 데릴 먼로 등 선수들은 저력을 발휘해 6, 7차전을 연승하며 대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시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고 정규리그 우승을 이룬 뒤 플레이오프, 챔프전까지 모두 승리한 와이어 투 와이어, 퍼펙트 우승의 신화였다.
서울 SK와 벌인 역대급 드라마
김상식 감독은 벅찬 감동의 시간을 열흘 정도 보내고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실 저는 평소에 눈물이 별로 없거든요. 다른 팀 우승 장면을 보면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데, 그런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정말 그럴까, 상상만 했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김 감독의 눈물 속에는 팀과 함께 땀 흘린 시간뿐 아니라 자신이 선수와 지도자로 걸어온 역경의 기억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특히 지도자로서 여러 팀을 전전하며 능력을 펼쳐 보일 기회조차 변변하게 얻지 못하고 마감하려 했던 순간에 감행한 ‘마지막 도전’이었기에 감격이 더 컸다.
김상식은 배재중, 양정고, 고려대를 거쳐 1990년 실업팀 기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1956년 멜버른올림픽 국가대표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가드이자 은퇴 후 국가대표 감독, 체육 행정가, 금융계 CEO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체육사에 한 획을 그은 김영기 전 KBL 총재(87)다.
아버지가 한국농구 최고스타이자 성공한 지도자, 행정가로 명성을 떨친 분이다 보니 그의 행실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큰 산과 같은 아버지는 그에게 힘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후 광주 나산에서 주전 슈터로 활약하며 ‘이동 미사일’이라는 멋진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1999년 안양 SBS(KGC의 전신)로 트레이드돼 2003년까지 뛰다가 은퇴했다. 모기업이 파산한 나산 농구단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간판선수인 그를 현금을 받고 내준 게 트레이드의 이유였다.
평범한 지도자 생활을 꿈꿨지만, 은퇴 후 여정은 기억하기조차 힘든 시간이었다. KT&G(SBS 후신)에서 기업은행 시절부터 그를 이끌어준 은사인 김동광 감독을 보좌했지만, 2007년 성적 부진으로 김 감독이 중도 퇴진하면서 감독대행을 맡아 잔여 시즌을 정리해야 했다. 이게 그의 ‘감독대행 인생’의 시작이었다. 위기의 팀을 잘 수습했지만, 정식감독으로 승격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2007-2008시즌에는 이충희 감독을 도와 대구 오리온스에서 코치로 일했다. 이 감독의 시즌 중 퇴진으로 또 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렀다. 이번엔 정식감독으로 승격됐지만, 2008-2009시즌 끝 무렵에는 그가 중도 퇴진의 운명을 맞았다.
이후 잠시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허재 감독과 함께 일한 그는 2012년부터 서울 삼성에서 다시 김동광 감독 아래서 코치로 일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운명처럼 2014년 김 감독이 중도퇴진했고, 3번째 감독대행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에도 정식감독의 몫은 그에게 오지 않았다.
공백이 생길 때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선진 농구를 보고 온 것만도 3차례. 매사에 성실하고 겸손한 그는 항상 노력하며 준비했으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후 허재 감독과 다시 만나 국가대표팀 코치로 일했다. 2018년 아시안게임 이후 허 감독의 사퇴로 운명 같은 4번째 감독대행을 맡아야 했다. 이후 감독으로 선임돼 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표팀 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물러났다.
그는 2022-2023시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프로팀 지도자 기회를 엿봤다.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감독 공백이 생긴 팀들은 대부분 젊은 지도자들로 빈자리를 채웠다. 그가 설자리는 없었다.
농구와의 인연 끊으려던 순간에
“농구는 저와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련을 모두 버리고, 마음을 정리하려고 제주도로 한달살이를 떠나 있을 때 허재 감독님 모친상으로 서울에 잠시 올라왔는데, 그때 KGC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난 2년간 팀을 우승, 준우승으로 이끈 김승기 감독이 신생팀 고양 점퍼스로 이동하면서 생긴 자리에 그가 추천된 것이었다.
인터뷰 당일 구단과 즉석에서 사인한 그는 사실 큰 부담을 안고 시즌 준비에 뛰어들었다. 전성현이라는 KBL 최고슈터가 이적해 득점원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 김 감독은 이를 선수 전원이 뛰면서 기회를 노리는 ‘모션 오펜스’로 해결했다. 배병준, 정준원 등을 영입해 많은 선수가 뛰면서 득점을 조금씩 나눠갖도록 했다.
쉼 없이 움직이는 농구를 하기 위해 선수들을 칭찬하고 장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팀워크를 깨는 행동은 엄격히 견제했다. 선수의 대학졸업식에 찾아가고, 외국인 선수 어머니의 방한 때는 작은 선물을 하는 등의 배려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선수와 지도자가 서로 믿고 희생하는 소통의 농구, 즐거운 농구는 ‘김상식 리더십’을 설명하는 대명사가 됐다. 지난 5월 15일에도 김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군에 입대하는 변준형 등을 격려하기 위해 논산훈련소에 다녀왔다.
농구와의 인연을 끊으려던 순간 찾아온 마지막 기회에서 일군 그의 성공을 가장 기뻐한 이는 그의 부모였다. 김영기 전 총재는 자신의 그늘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아들을 늘 안쓰럽게 여겼다. 김 감독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부모에게 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우승 뒤에 아버지께 전화 드렸더니 ‘어, 수고 많이 했어’라고 한마디 해주셨어요. 우리가 평소에 살갑게 대화하는 편은 아니에요.”
시즌 시작 전 6강 후보로조차 거론되지 않던 팀을 3관왕으로 이끈 그는 최근 구단과 1년 연장계약을 맺어 앞으로 2년을 보장받았다. 돌이켜 보면 그가 걸어온 가시밭길의 경험이 극적인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언제까지 지도자를 하겠다는 계획은 없어요. 힘든 과정을 너무 겪다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선수들과 늘 즐겁게 최선을 다하자는 겁니다. 올해처럼 변함없이 갈 겁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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