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간 기립박수 받은 이선균…레드카펫 두번, 명실상부 ‘칸의 남자’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5. 2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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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잠’ ‘탈출’ 동시 상영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만난 배우 이선균. 그는 주연작 ‘잠’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로 2편이 동시에 칸에 초청받는 영예를 안았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프랑스 칸영화제에 초청받아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는 몇이나 될까. 한 사람이 각각 주연으로 참여한 두 편의 장편영화가 같은 해 칸에 동시 초청받고 그것도 ‘같은 날’ 상영되는 영예를 누려볼 확률은 또 얼마일까.

저 바늘귀보다 작은 가능성을 배우 이선균이 뚫었다.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현실로 벌어진 일이다. 21일(현지시간) 낮에는 영화 ‘잠’으로, 같은 날 밤에는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로 이선균 주연 영화가 나란히 상영됐다. 그야말로 ‘이선균 데이(day)’가 아닐 수 없던 이날 처음으로 공개된 이선균 주연작 두 편을 차례대로 관람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이선균.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그의 영화가 상영된 직후 5분 가까이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그의 바로 뒷줄은 아내 배우 전혜진과 장남 이룩.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얼굴은 블러 처리했다. <김유태 기자>
칸 현지 에스파스 미라마(Espace Miramar) 극장에서 최초 공개된 이선균 정유미 주연의 영화 ‘잠’은 수면 중 이상행동, 즉 몽유병이 배우자에게 주는 공포를 서사화한 작품이다. 아내 수진(정유미)이 밤중에 깨어보니 남편 현수(이선균)가 침대 모퉁이에 걸터앉아 말한다. “누가 들어왔어.” 수진은 직업이 단역 배우인 현수가 꿈결에 읊은 대사로 생각하지만 그의 이상행동은 점점 심해진다. 수면 중 얼굴을 심하게 긁어 이튿날 피칠갑이 돼 있고, 냉장고로 저벅저벅 걸어가 생고기를 씹어 삼킨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한 현수는 다음날이면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남편으로 돌아와 있다. 잠든 현수가 반려견 ‘후추’를 위험에 빠뜨리자 만삭인 수진은 곧 태어날 아기의 생명까지 걱정한다. 수진의 친정엄마는 “이혼 사유”라며 길길이 뛰고, 집을 방문한 무당은 “남자 귀신이 씌웠다”며 천도제를 주장한다. “이건 오빠(현수)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부인하던 수진은 서서히 미신에 빠져든다.

영화 ‘잠’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중타 이상의 큰 웃음이 수회 터지는 코믹적 요소에 극대화된 공포감을 병렬 배치하고, 여기에 오컬트(주술이나 유령 등 영적현상) 요소까지 삽입한 혼종의 명작이다. 장르 해체적 관점에서 보면 영화 ‘기생충’ 정서를 잇는다. 인간의 일상 가운데 죽음과 가장 유사한 잠을 통해 현실을 악몽으로 바꿔내는 ‘1989년생’ 유재선 감독의 귀기 어린 전개가 놀라운 작품이다.

영화 상영 직후 만난 이선균은 “영화 ‘잠’의 가장 큰 공포는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라며 “일상적인 공포를 표현하는 시나리오란 점에 끌렸다. 특히 유 감독님이 봉준호 감독님의 2017년작 ‘옥자’에 참여했는데, 봉 감독님이 영화 ‘잠’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잠’이 칸까지 진출하게 돼 더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영화 ‘잠’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같은 날 자정 넘어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역시 최초 공개된 이선균·주지훈·김희원 주연의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단 1분도 관객에게 평안을 허락하지 않는 재난영화다.

재난의 장소는 ‘공항대교’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종대교 상판 위다. 끔찍한 재앙의 전조처럼 짙은 안개가 드리운다. 한 인플루언서가 노랑 카마로SS 차량을 전속력으로 몰다 전복되고 뒤따르던 수십 대 차량이 연쇄추돌을 일으켜 무려 116명이 안개 자욱한 공항 다리에 고립된다. 문제는 그날 공항대교에 ‘폐기처분’ 지시가 떨어져 특수 트레일러에 실려 운반중이던 특수군견 수십마리가 함께 갇혔다는 것.

사람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검은 개들이 마치 약속한 듯이 사람들을 공격한다. 풀려난 군견을 수습하려 군용 헬기가 투입되지만 예상대로 추락하며 공항대교 하중을 지탱하는 케이블을 들이받는다. 케이블이 차례대로 끊어지고 사고차량에서 유독가스가 흘러나오자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정원(이선균)은 청와대과 직통하며 시민을 구한다. 노란 장발 머리에 브릿지를 넣은 양아치 렉카 기사(주지훈), 군견에게 ‘프로그램’을 삽입한 책임자 양박사(김희원)가 대교 위 지옥에서 함께 탈출할 동행자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한 장면. [사진=CJ ENM]
‘탈출’ 상영 직후 뤼미에르 대극장에선 5분 가까이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으로 초청받은 이 영화의 수천 명 관객들은 상영이 종료된 새벽 2시 30분에도 지치지도 않고 거대한 박수갈채로 김태곤 감독과 명배우들의 작품성에 보답했다. 특히 ‘기생충 배우’ 이선균이 환호하는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중계되자 더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2019년 ‘기생충’으로 이곳 뤼미에르 대극장을 찾았던 이선균은 24년 연기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한 장면. [사진=CJ ENM]
칸영화제 로고
이선균은 “사실 저도 하루에 두 영화 상영이 겹칠 줄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5월 21일)이 더 정신없게 지나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전작과 얼마나 다른지, 그래서 전작의 캐릭터가 주는 기시감은 없는지, 또 감독님들과의 신뢰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환경이 너무 바뀌었는데, 관객분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생충’에 함께 출연했던 송강호 배우와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반갑게 재회할 예정이다. 이선균은 “강호형은 내일(22일) 칸에 들어오시는 걸로 알고 있다. 내일 일정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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