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나이들기, 왠지 인위적인[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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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나이 드는 건 어떤 것일까.
최근 노라 에프런의 책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에 부제로 달린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을 보면서 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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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나이 드는 건 어떤 것일까. 최근 노라 에프런의 책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에 부제로 달린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을 보면서 든 질문이다. 원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그리고 다른 성찰들'이다. 책에 실린 글을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성찰은 '요즘 드는 생각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요즘'이란, 제목이 가리키듯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인생 즈음이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다가오는 여동생을 순간 못 알아볼 정도라고 말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쓴 사람 아닌가. 이 영화에서 맥 라이언이 연기한 과장된 '가짜 오르가슴'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독자라면 저 말이 에프런 특유의 말하기 방식에 속하는 것임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모음집에 실린 글을 쓸 때가 69세였으니 MRI 뇌 촬영을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기억의 깜빡거림이나 사라짐은 '자연스러운' 일에 속한다. 자연스럽게 기억하기 방식이 달라진다.
책의 글들은 에프런 특유의 톡 쏘는 풍자와 유쾌하지만 얕지 않은 통찰력을 충분히 과시한다. 그러나 살아낸 시간의 주름 사이사이에 깃든 디테일과 동시에 주름의 굽이들 전체를 한마디로 아우르는 관점은 이 달라진 기억하기 방식 덕분이다. 시간의 주름을 거꾸로 주르륵 훑을 때 저절로 명료해지는 삶의 몇몇 진실 같은 거 말이다. 이것은 60대 후반부쯤에 들어서면 경험하게 되는 '요즘 드는 생각들'의 특이성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보자.
"하지만 진실은, 이런 종류의 로맨스가 끝장날 때에는 어떤 변명이든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세부 사항만 조금 다를 뿐 이런 이야기는 항상 똑같이 진행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우상화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따라다닌다.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을 받아들여 준다. 젊은 여성은 나이 든 여성이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 끝."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는 2012년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출간된 것의 새로운 판본이다. '잘 나이 들기'가 출판시장의 자기 계발 코너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철들기'와 '나이 들기'가 자리바꿈한 건 이해된다. 그런데 우아한 나이 듦은 왜 강조되는 걸까. 에프런이 유쾌한 건 맞지만 우아한지는 모르겠다. 지혜롭게, 품위 있게, 우아하게, 존엄하게! 나이 들기 앞에 주로, 늘 붙곤 하는 수식어다.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용인할 수 있는 나이 듦은 이 정도까지라는 걸까. 이 수식어들은 그저 두루뭉술하게 긍정적인, 그러나 의미는 매우 애매모호해서 결과적으로 추상적이다. 게다가 확실히 정적이고, 조금은 '박물관'스럽다. 외국어로 쓰인 나이 듦이나 노년 관련 책의 '건조하고 사실(직시)적인' 제목과 표지는 한국어로 번역될 때 그야말로 '우아하게' 변신한다. 상담소를 한번 거치면서 사회심리적으로 견딜 만하게 코팅을 입힌다고나 할까. 사람마다 나이 드는 모습이 얼마나 다른데, 이렇게 울타리를 치나. 나이 드는 과정에서만큼은 개성과 문화 다양성의 원칙이 무시되어도 괜찮다는 것일까. 잘 나이 들기가 화두가 되려면 '잘'에 대한 사회적 자유가 온전히 주어져야 한다. 현실 속에서 '잘'은 늘 개인과 구조의 타협이고 조율이지만, 적어도 원칙상으로는 온전한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고, 그것은 늙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노라 에프런도 나처럼 말할 게 분명하다.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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