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 ‘샌드위치 한국’…대중국 ‘위험 회피’ 전략 실종

박은경 기자 2023. 5. 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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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G7 폐막일 맞춰 맞불…한국 경제·안보 리스크 고조
비자·대만 문제 등 중 자극까지 실리 확보 ‘치밀함’ 없어
정작 미국은 중국과 대화 병행…한·중, 국장급 협의 나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도네시아 발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지난해 11월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 주도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대중국 견제가 한목소리로 나오자 중국은 즉각 반격 조치를 쏟아냈다. 한국에 유탄이 튀지 않을지 우려가 커지는데도 윤석열 정부의 경제·안보·외교적 위험 회피(디리스킹)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일변도 외교로 대중 압박 선봉장을 자처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은 한·중관계 관리를 두고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일부 국가들은 국익을 우선한 각자도생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G7 정상들조차 공동선언에 “중국과 디커플링(특정국 배제나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디리스킹과 경제적 탄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란 표현을 담으며 중국을 적대시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미국과 초밀착하고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갈등 구도의 나침반을 자처하면서, 이로 인해 야기될 위험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

최용준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방한 중인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장이 22일 외교부 청사에서 한·중 국장급 협의를 했다. 지난 1월 박진 외교부 장관과 친강 중국 외교부장의 전화 통화 이후 양국 외교당국 간 첫 대면 소통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중관계 회복을 꾀하는 중요한 시기에 출범했다. 중국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시진핑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 당시 국가부주석을 보내며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전진하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그러나 취임 열흘 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미·중 균형외교 폐기를 선언하고 ‘경제도, 안보도 미국’이라는 방향을 명확히 했다.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확정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 등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 대 비동맹국 구도에 뛰어들었다.

‘중국발 후폭풍’에 대한 관리는 치밀하지 못했다. 올해 초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우리 정부가 취한 중국인들의 단기 비자 발급 중단 조치는 양국 감정 악화의 도화선이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국빈 방미를 앞두고 외신과 인터뷰하며 대만 문제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하고, 미 의회 연설에서는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승리 토대를 닦았다고 주장하는 장진호 전투를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언급했다. 귀국 후 기자들과 한 오찬에서는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간 한·중관계를 지탱해온 경제도 심상치 않다. 22일 관세청이 발표한 5월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을 보면 대중 수출이 23.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대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같은 미국의 표현 대신 한국만의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발 빠른 외교보다는 한발 늦은 외교가 한국에 유리하다”며 “변화하는 국제정세, 미국의 대선 결과 등 상황을 고려할 때 정책을 너무 빨리 결정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0~11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을 계기로 미·중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는 등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반대방향을 택하는 ‘ABM(Anything But Moon)’이나 민주주의 가치 동맹에 얽매인 외교적 경직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이 지난해 11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의 ‘1.5트랙 대화 체제’를 제안한 것을 언급하며 한·중 간 소통 채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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