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3국 공조’ 진화냐, 굴레냐

유정인 기자 2023. 5. 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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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한·미·일 회담 ‘3차례’…대북·대중 넘어 포괄적 동맹
다자회담 틀 깬 워싱턴 회담 ‘예약’…가치동맹 재확인 전망
중·러 외교 리스크 현실화, 독자적인 움직임 축소될 우려도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지난 21일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마친 뒤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일 정상은 일본 히로시마 3국 정상회담에서 향후 공조를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한·미·일의 공동 행보 범위가 ‘대북 전략 → 대중국 전략 → 글로벌 전략’으로 전방위 확산하는 흐름에 쐐기를 박았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1년 만에 역대 정부 기준 최다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석했고, 앞으로도 이 틀을 외교의 주요 축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중심의 3국 협력 틀에 깊숙이 발을 들이면서 한국 정부가 독자적인 속도와 방향으로 외교를 펼 공간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21일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연 뒤 발표문을 통해 “3국 간 공조를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공조 범위에는 전통적 이슈인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전략, 경제안보, 태평양도서국 관여에 대한 협력 등이 적시됐다.

‘새로운 수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처음으로 3국의 포괄적 협력을 명시했던 지난해 11월 ‘프놈펜 성명’의 연장선에서 전방위적 전략 협력을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2일 YTN에서 “(새로운 수준의 공조를) 사전적 의미로 세 나라가 정의해 놓은 건 아니다”라면서도 “안보 의제의 깊이를 더하고 의제의 외연을 확대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3번째 한·미·일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3국 공조 의미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북핵 대응은 3국 정상회담의 사실상 유일한 의제에서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바뀌었다. 한·미·일 정상회담은 유례없이 빈번해졌고,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공급망 협력과 글로벌 이슈 등 그간 양자회담에서 거론되던 문제들이 대거 3국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랐다. 여기에는 한·미·일 공조를 대중국 견제, 나아가 전체 글로벌 이슈에 대응할 전략적 핵심 축으로 활용하려는 미국 의도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많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간 다자회담을 계기로 모이던 틀을 깨고 이례적으로 ‘워싱턴 3국 정상회담’을 제안한 데도 한·미·일 공조를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구심력 안으로 확고히 끌어들이고자 하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역대 한·미·일 정상회담을 살펴봐도 최근 1년 사이 3국 밀착이 얼마나 질적으로 변화했는지가 확인된다. 한·미·일 정상회담은 1994년 11월 김영삼 정부 때 시작된 이후 역대 정부마다 한두 차례씩 현 정부 출범 전까지 총 10번 열렸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첫 1년여 만에 이미 3차례 3국 회담을 열었고 4번째 회담도 추진 중이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50여일 만에 열린 첫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 정상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 의지를 확인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까지 북핵 등 안보협력이 3국 정상회담의 사실상 유일한 화두였다. 윤석열 정부 이전에 나온 3국 공동성명과 공동발표문 내용은 북핵 이슈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글로벌 금융위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소수의 회담에서 말미에 거론됐을 뿐이다.

워싱턴 정상회담이 가시화하면 한·미·일 정상은 처음으로 다자회담 계기가 아닌 별도 회담만을 위해 모이게 된다. 김 차장은 이날 “유엔총회라든지 다자회담 계기에 워싱턴에서 세 나라 정상이 만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별도 회담에 무게를 실었다. 추가 회담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끼리의 ‘가치동맹’을 내걸고 포괄적 협력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밀착이 깊어질수록 한국 정부의 외교적 리스크도 함께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북핵 대응을 위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동시에 안보·경제 주요 이해관계국인 중국·러시아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복합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미국, 일본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면 외교적 자율성의 공간이 좁아지는 측면이 있다는 의미다. 당장 중국·러시아는 한·미·일 밀착에 이미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적정한 협력과 견제의 거리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한국 정부의 외교적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낙관적 분석을 내놨다. 김 차장은 “중국, 러시아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있고 고위급 레벨에서도 필요한 현안에 대해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두고 “우리 정부 출범 후 한·중관계라든지 한·미·일 관계의 영향도 있겠지만 중국도 현안 문제에 대해 일본, 한국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면서 “우선 중국, 일본 그리고 중국, 한국 간에 양자 간의 전략대화를 시작하려 하고 계획이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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